ADVERTISEMENT

"플라스틱 다 먹어치우겠다"…쓰레기산을 먹이로, 대자연 진화

중앙일보

입력

해저 1만1000m부터 해발 8850m까지.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게 플라스틱이다. 2021년 한 해도 지구에는 수억t의 플라스틱이 방출됐다. 플라스틱은 완전 분해까지 수백 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거해 재활용하지 않는 이상 쓰레기로 쌓인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방역용 마스크 등 각종 방역용품 급증으로 플라스틱의 역습이 더욱 거세졌다.

플라스틱 분해 미생물 효소 3만개 발견 #스웨덴 연구팀 "플라스틱 먹이 삼아 진화"

바다 거북이가 플라스틱 봉투를 머리에 쓴 채 헤엄치고 있다. [그린피스]

바다 거북이가 플라스틱 봉투를 머리에 쓴 채 헤엄치고 있다. [그린피스]

자연도 인류가 자초한 최악의 상황에 병들어 가긴 마찬가지다. 다만 플라스틱에 굴복하기보다 한발 앞서 생존 방식을 찾았다. 지천으로 널린 플라스틱을 다 먹어치우자는 ‘담대한 계획’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스웨덴 샬머스 공과대학 생명과학부 연구팀은 자연 속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삼아 살아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생물 생태학’(Microbial Ecology) 저널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연구진은 전 세계 바다와 육지 236곳에서 채취한 DNA 샘플을 분석한 결과 유기체의 25%가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기존에도 자연에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 효소가 있다는 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수만 개가 처음 발견됐고, 이는 미생물의 플라스틱 분해 잠재력을 확인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캉구의 한 해변에서 관광객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해변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캉구의 한 해변에서 관광객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해변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연구진은 DNA 샘플에서 걸러낸 2억여 개의 유전자에서 이미 알려진 효소 95가지를 제외시켰다. 이후 플라스틱을 분해하지 못하는 효소와 대조해 새 효소를 추출했다. 그 결과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10가지 유형의 미생물 효소 3만 가지가 발견됐다.

오염 심할수록 효소도 덩달아 진화

주목할 점은 발견한 효소의 수와 유형이 DNA 샘플 채취 지역의 플라스틱 오염 수준 및 유형과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해양에서는 67곳에서 약 1만2000개의 플라스틱 분해 가능 효소가 발견됐는데, 바다의 수심에 따라 효소의 특성이 달랐다. 수심을 3단계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플라스틱 오염도가 심각한 얕은 곳에는 그만큼 효소 수도 많았다. 오염도에 비례해 효소도 증식했다는 얘기다. 또 깊은 곳에서 발견된 효소가 더 강한 플라스틱 분해력을 보였다.

지난 5월 스리랑카 콜롬보 해변 인근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 사고 때 죽은 물고기. 선박에서 흘러나온 플라스틱 원료 알갱이를 입에 머금은 채 죽었다. [EPA=연합뉴스]

지난 5월 스리랑카 콜롬보 해변 인근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 사고 때 죽은 물고기. 선박에서 흘러나온 플라스틱 원료 알갱이를 입에 머금은 채 죽었다. [EPA=연합뉴스]

육지에서는 169곳에서 약 1만8000개가 발견됐다. 토양에는 바다에 비해 화학 물질인 프탈레이트가 포함된 플라스틱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토양 샘플에서 이 물질을 공격하는 효소가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새롭게 발견된 효소의 약 60%는 기존의 효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분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알렉세이 젤레즈니악 교수는 “이렇게 다양한 장소에 다양한 미생물 효소가 많이 분포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지난 70년 동안 플라스틱 생산량이 연간 200만t에서 3억8000만t으로 증가하자 미생물도 플라스틱을 먹는 쪽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구촌 플라스틱 오염과 미생물 군집의 플라스틱 분해 가능성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됐다”고 자평했다.

지난 1월 세르비아의 수력발전소 인근의 호수. 수면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세르비아의 수력발전소 인근의 호수. 수면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플라스틱 산 없앨 해결사 기대감 

플라스틱을 먹어서 분해하는 미생물은 2016년 일본의 한 쓰레기장의 플라스틱병에서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당시 이 미생물은 수년이 걸려야 썩는 페트병을 6주 만에 완전히 분해했다.

2년 뒤에는 미생물에서 플라스틱 먹는 효소 ‘페타제’(PETase)가 발견됐다. 페타제는 플라스틱 표면을 공격해 분해 속도를 최대 20% 높였다. 이후 또 다른 효소 ‘메타제’(MHETase)가 발견됐고, 2020년에는 이 두 효소를 결합한 ‘수퍼 효소’ (super-enzyme)가 탄생했다. 수퍼 효소는 플라스틱 분해 속도를 6배 높였고, 효소 활성력도 3배 이상 높았다. 여기에 이번에 수만 개의 효소가 추가로 발견되며 플라스틱을 ‘먹는’ 효소 연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다.

인도네시아의 한 환경 운동가가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하루 동안 그레식 강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용기 4444개로 만든 설치물. [AFP=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한 환경 운동가가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하루 동안 그레식 강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용기 4444개로 만든 설치물. [AFP=연합뉴스]

다만 이 효소들의 분해 능력을 향상할 방법과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에 활용할 방법을 찾는 건 또 다른 과제다. 젤레즈니악 교수는 “새롭게 발견한 효소를 대상으로 플라스틱 종류에 따른 분해 특성, 분해 속도 등에 대한 추가 시험에 나선다”며 “이를 통해 특정 화합물에만 반응해 표적 분해하는 미생물 군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