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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터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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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지난 8월만 해도 일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루 확진자가 2만 명을 넘나들면서, 도쿄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가 컸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대로라면, 하루 확진자가 100명 내외로 확 줄었다. 오미크론 변이로 온 세계가 다시 코로나 확산에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희한하고 드문 사례로 꼽을 만하다.

일본 내에선 확진자 감소의 배경을 두고 ‘팩터X’ 논의가 한창이다.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일본만의 특별한 요인(팩터X)이 있다는 것이다. 팩터X란 말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에 처음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 감염자 수가 적은 데에는 일본인만의 특별한 유전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야마나카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지만, 당시 주장의 근거를 따로 제시하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일본 연구자와 언론이 이런저런 가설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인 60%가 가진 백혈구 항원 타입(HLA-A24)이 코로나 중증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언론은 집안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와 높은 결핵예방접종(BCG)율, 낮은 비만도 등을 일본만의 팩터X 후보로 거론하기도 했다.

팩터X 연구가 충분히 진행된다면 실체 여부가 밝혀질 수 있겠지만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령 신발을 벗는 문화나 높은 BCG 접종률이 코로나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견해는, 비슷한 여건인 한국의 확산세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대다수의 일본 언론도 “팩터X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아직은 어떤 것도 명확하진 않다”고 소개한다.

타고난 유전 형질이나 오랜 생활 습관이 코로나를 막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의 현실에서 그런 희망 회로를 돌리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연일 7000명 안팎 확진자가 나오며 확산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댈 것은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철저히 과학에 근거한 방역뿐이다. K방역 자화자찬에서 벗어나고, 정치방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그게 한국의 팩터X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