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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이재명 후보의 말에 길을 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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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가 12일 경북 문경시 가은역을 찾아 꼬마열차에 탑승하며 20여년 전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에서 관광지로 바뀐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가 12일 경북 문경시 가은역을 찾아 꼬마열차에 탑승하며 20여년 전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에서 관광지로 바뀐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
 잘못 알고 있나 해서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 영상회의록(18분)을 봤다. 국민의힘 유상범·전주혜·조수진 의원 모두가 대장동 특검법 상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 후보, 때와 장소 따라 말 달라져 #특검·기본소득에 전두환 평가까지 #'할 일' 흐릿해지고 권력의지 부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며 11월 18일 조건 없는 특검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자신이 수사했던) 부산저축은행 것을 포함해서 하겠다고 했고 ‘고발 사주’까지 포함해서 ‘쌍특검’을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선 특검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유 의원), “완벽한 이중 플레이다.”(조 의원)

 민주당은 그저 “원내대표단에 진지한 대화를 촉구하고자 한다”(박광온 법사위원장)고 반응했다. 너무나 분명했다. 속도를 안 내는 쪽은 민주당이었다. 실제 민주당은 9일까지 정기국회 동안 세 번 상정을 막았다.

 이 후보는 그런데도 11일 “윤 후보 본인 혐의가 드러난 부분을 빼고 하자는 엉뚱한 주장으로 이 문제가 앞으로 진척이 못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을 근거로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한 건가. ‘특검을 거부한 자가 범인’이란 이 후보의 논리를 적용하면 민주당이 더한 용의자 같은데 말이다. 하기야 이 후보가 ‘당내 민주화’를 강조하던데 정작 민주당은 이 후보에 대한 비난 글이 넘쳐난다는 이유로 당원 게시판을 폐쇄했다던가. 이 후보의 의중은 어디에 있나.

 #2.
 이 후보는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두고 ‘내란·학살 주범’이라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의 기념석을 밟기도 했다. 윤 후보가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가 난타당할 때 이 후보는 “철학도, 역사 인식도, 준비도 없다”고 가세했다. 그러더니 그제 TK(대구·경북)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삼저(三低)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다”고 했다. 정치 아닌 경제를 평가하는 건 역사 인식이 있는 건가. “경제는 정치”라고 말한 건 이 후보 아니었나.

 윤 후보의 ‘대구 민란’ 발언도 떠오른다. 지난 7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초기에 퍼진 곳이)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질서 있는 처치나 진료가 잘 안되고 민란부터 일어났을 거라고 할 정도”라고 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 후보는 그제 “다른 나라 같으면 마스크 안 사주고 ‘마스크 써라’ 하면 폭동 난다”고 했다. 대구와 나라, 민란과 폭동의 차이가 그리 큰 건가.

 #3.
 기본소득에 대한 이 후보의 발언은 수사학 교본이랄 수 있다. 하겠다고 했다가 “국민이 반대하면 할 수 없다”고 하더니 철회한 적 없다고 했다. “존경한다”고 했다가 “진짜 존경하는 줄 아나”의 대상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 정책을 가장 빨리 도입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기초연금도 기본소득이라면서다.

 이 후보는 입장 선회 때마다 ‘국민의 뜻’을 내세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두곤 “한번 정했다고 그냥 밀어붙이는 건 벽창호”라고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벽창호’까지 염두에 둔 말인지 궁금해진다. 종전선언을 두고 일본도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한민국 정치인이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건 친일을 넘어선 반역행위”라고 했던데 한 달여 년 전 SBS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41.6%였다. 이들 뜻을 대변하는 게 반역인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4.
 정치권에선 이 후보의 ‘다변(多辯)’이 리스크라고 말한다. 진정한 리스크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다변(多變)’에 있다. “말로 내 편을 많이 만들어서 이겨서 기회를 얻는 것”이란 그의 정치관 때문인 듯한데, 그러는 사이 쌓이는 엇갈린 말로 그는 점점 정체불명의 후보가 되어가고 있다. 대신 분명해지는 건 그리해서라도 이기겠다는 그의 권력 의지다. 그는 무엇을 (안) 하겠다는 건가. 그의 말 속에서 길을 잃었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