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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홍의종군(紅衣從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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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대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윤 후보,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홍준표 의원은 9일 "퍼포먼스로 청년들을 잡겠다고 설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윤 후보를 공격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대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윤 후보,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홍준표 의원은 9일 "퍼포먼스로 청년들을 잡겠다고 설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윤 후보를 공격했다. 임현동 기자

‘천국행 티켓이 딱 한 장뿐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기자가 묻자 재임 시절 레이건 미 대통령은 “찢어버리겠다”면서 “토머스 오닐 민주당 하원의장 없이 나만 천국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농담이다. ‘배우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어떻게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같은 일을 하는 걸로 봤던 연기파 대통령이다. ‘천국을 가는 데 꼭 야당과 함께해야 한다면 아예 안 가겠다’고 솔직하게 답한 제퍼슨 대통령과는 달랐다.
 그런데 마냥 웃자는 말만도 아니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 의회는 여소야대였다. 레이건은 공식 집무 시간의 70%를 야당 인사와 만났다. 오닐 의장과는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하거나 대면했다. 오닐의 생일잔치를 백악관에서 열어줬다. 똑같이 여소야대 의회를 만났던 오바마 대통령도 똑같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야당 의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사비(私費) 처리하는 비공식 행사였다. 한 달에 평균 두 번꼴로 언론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낮추고 설득했다.
 우린 지금 초거여(超巨與) 국회다. 만약 석 달 남은 대선에서 야당이 이긴다면 2년 가량 압도적인 야대 국회가 된다. 식물 정부까진 아니겠지만 새 정권에 혹독한 환경일 건 보나마나다. 노무현 정부 땐 불과 3개월 만에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굳이 옛날 일을 들추지 않아도 오세훈 서울시장을 사실상 가둔 지금의 서울시 의회와 어슷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극도의 갈등을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분권과 협치다. 여론을 등에 업고 쭉 내달리는 길이 아니라면.
 ‘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가리지 않고 발탁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주장은 그런 얘기일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대선 승리 뒤에나 생각해볼 일’이라고 일단 외면했다. 양쪽 모두 일리가 있다. 윤석열은 ‘정권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이 돼 문재인 정권 임기 중의 범죄와 비리를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적폐청산과 같은 기준으로 단죄해 주길 바라는 유권자가 많다. 따지고 보면 그게 야권 지지층의 가장 큰 에너지다.
 그런데 어느 쪽이 됐든 먼저 야권 전체가 한 팀을 이루는 게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개혁의 목소리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자면 선두에 선 사람 자체가 개혁의 상징과도 같아야 하고 적어도 같은 편에선 그 외침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거리가 있는 야당이다. ‘3김 위원장’ 선대위는 서로 ‘내가 전권을 쥐어야 한다’는 낡은 싸움 중이다. 경선 경쟁자들은 그런 선대위를 놓고 ‘벌써부터 아첨에 둘러싸여 전두환 장군 등극 때와 같다’고 퍼붓거나 뒷짐을 졌다. 친박 세력은 속내가 더 복잡하다.
 야당은 서울시장 보선 당시의 정권 심판 분위기가 살아 있다며 어떻게든 이길 거라고 장담한다. 분위기론 그렇다. 그런데 당시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로 이겼다. 그 전엔 모두 자기들끼리 싸우다 내리 망가졌다. ‘진박 낙하산’이다 뭐다 하는 자기 사람 내리꽂기로 외면받았다. 그럼 당장 홍준표, 안철수 더 나아가 정의당과 힘을 보태는 선거의 용광로가 정답일 텐데 그런 건 또 아니다. 이 사람은 안 된다, 저 사람도 안 된다 하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는다. 모든 역량을 끌어모으겠다는 절실함은 없다.
 나이 지긋한 진보 출신 명망가와 30대 당 대표가 끝이 아니다. 기득권은 정부와 여당인데 기득권에 봉사하고, 기득권 향유에 몰두하는 기득권 정당은 국민의힘이라고들 느끼는 게 야당의 진짜 문제다. 이젠 진짜로 버리고 바꿔야 한다. 그래야 뭉치는 길이 나온다. 백의종군 정도론 어림도 없다. 빨간 목도리를 서로 둘러주며 홍의종군(紅衣從軍)을 합창해도 힘겨운 선거다. 정권을 잡아도 첩첩산중 가시밭길인데 정권을 잡기도 전에 ‘벌써 배불렀다’는 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그 어려운 전쟁을 치를 건가.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어떻게든 이길 거란 국민의힘 #정권교체 여론보다 한참 뒤지는 #후보 지지율 높일 방안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