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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박항서 덕 봤다" 베트남서 요소수 구한 상사맨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밤 LX인터내셔널 한국 본사에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베트남에서 요소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남아있었다. 현지 업체가 대규모 수출 경험이 없다 보니 연료 확보 등을 위한 현금 지원이 필요했다. 김관영 하노이 지사장(43)은 한국 본사에 있는 전략팀장, 사업담당팀장, 자금팀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지금 물량을 받아야 한다. 내일 아침에 (베트남 업체) 사람 마음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본사는 적극 호응했다.

김관영 LX인터내셔널 하노이 지사장

하지만 이후에도 계약 성사를 위해선 처리해야 일이 많았다. 본사와 지사는 주말을 반납했다. 김 지사장은 토·일에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 머물렀다. 결국 회사는 베트남에 있는 3개 업체와 6개의 요소수 관련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요소수 1100톤을 구한 것이다. LX인터내셔널이 지난 10일 동남아 4개국에서 요소수 1254톤, 중국에서 요소 1100톤을 긴급 확보했다고 발표하기까지 있었던 뒷얘기다. LX인터내셔널은 20개국 50여 개 글로벌 사업거점을 보유한 종합상사다.

베트남 현지에 있는 김 지사장과 11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 지사장은 LG상사 시절부터 10년 넘게 일해온 상사맨이다.

김관영 LX인터내셔널 하노이 지사장. [사진 LX인터내셔널]

김관영 LX인터내셔널 하노이 지사장. [사진 LX인터내셔널]

요소수 확보 전부터 컨테이너 배 수배 

베트남에서 요소수 생산 기업은 어떻게 찾았나. 
“지난 1일 한국 본사에서 요소수를 확보하라는 긴급 지시를 받고 바로 요소수 구하기에 뛰어들었다. 사실 모든 업무의 시작은 구글링이다. 우선 요소수 수출입 데이터부터 구했다. 그런 뒤 상위 업체들부터 순서대로 연락했다. 사실 베트남은 요소수를 만들면 주로 자국에서 판매하지 수출은 그리 많지 않다. 수출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서 그렇다. 생산 능력이 있고 수출 경험이 있는 기업을 찾긴 했는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업체가 처음엔 전화를 받더니 다음엔 안 받더라. (다른 기업 문의 등으로) 전화통에 불이 나는 상황 같더라. 어떻게든 요소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짐 싸들고 업체로 찾아갔다. 직원들에게 윗분을 만나게 해달라는 읍소 끝에 ‘한 번 들어와 봐’ 해서 만났다. 이야기해보니 업체도 계약하고는 싶어하는데 걱정이 많더라. 본인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큰 물량을 수출해보지 않았다는 거다. 능력은 되는데 연료도 확보해야 했고, 생산한 뒤엔 부피가 크니 적재 공간이 없어 하루 이틀 안에 물건을 빼줘야 했다. 
대량을 컨테이너로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넘겨야 하는 지도 잘 모르고. 그래서 ‘당신은 생산에만 집중하십시오. 다른 건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우선 컨테이너에 실을 수 있게 요소수를 담는 대형 탱크 업체부터 수배해서 연결해줬다. 그랬더니 그제야 ‘그럼 해 봅시다’ 하더라. 사실 물건을 확보하기 전인 1, 2일부터 컨테이너 배도 수배하고 있었다. 물건을 잡고 나서 배를 알아보려면 선적과 한국에 도착하는 날짜가 늦어질 수 있어서다. 물류 담당 자회사인 판토스 역할도 컸다.”

오징어게임, 박항서 감독 덕 봐

현지 업체 마음을 사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던데. 
“처음 업체에 찾아갈 땐 너무 급하게 가서 아무 준비도 못 해갔다. 하지만 두 번째 업체에선 사장이 올 때까지 3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간식을 직원들에게 돌리고 오징어게임, BTS, 박항서 감독 이야기를 했다. 마침 베트남과 일본 간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있는 데다 박항서 감독이 1년 더 베트남 팀을 이끌게 돼서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게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됐다. 나중에 다시 업체에 갔더니 그사이 대만 쪽에서도 연락이 오는 등 다른 기업들이 많이 와서 ‘줄 서서 기다리라’고 하던데 우리와는 신뢰가 생겨서인지 프리패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소수 가격이 대폭 상승하지 않았나. 
“처음에 제시했던 가격 이후 상승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베트남 업체가 한국의 요소수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가격을 올리려고도 했는데 우리가 빨리 움직였고 많은 물량을 확보해서 그나마 괜찮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3개 업체와 계약을 6개 맺어서 1100톤을 확보했는데 마지막 계약을 할 땐 처음 계약 가격 대비 30%정도 오르긴 했다.”

“수익보다 국가 공급이 중요”

취급 안 하던 물품을 갑자기 구하는 게 힘들지 않나. 
“우리는 산업에 필요한 소재를 트레이딩 하는 회사다. 하지만 작년부터 코로나 이슈로 마스크, 방호복 등 국가에서 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왔다. 회사 대표께서 이에 대해선 ‘수익 보다는 국가에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해왔기에 요소수 사태가 터졌을 때 돈이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반드시 확보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다. 다만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면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물량을, 베트남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물량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요소수 대란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10일 대전의 한 주유소 요소수 주입기에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요소수 대란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10일 대전의 한 주유소 요소수 주입기에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 지원은 어땠나.
“베트남 대사관도 워낙 내용 잘 알고 계시고 저하고도 거의 매일 통화한다. 코트라 쪽에서도 관세 등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요소수는 확보했지만 선적이 되고 한국에 들어가기까지 대사관, 코트라의 도움도 중요하다.”
향후 전망은. 
“전세계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기잖나. 요소수 문제도 그렇지만 산업 소재 등에서 앞으로 동남아 국가, 베트남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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