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하, 보은의 가을…두산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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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올해 포스트시즌을 외국인 원투펀치 없이 치르고 있다. 와일드카드(WC) 결정전 2경기, 준플레이오프(준PO) 3경기, 플레이오프(PO) 2경기 중 선발 투수가 5회를 채운 건 딱 한 경기(준PO 3차전)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이긴다. 정규시즌 5위 키움 히어로즈는 물론이고, 3위 LG 트윈스와 2위 삼성 라이온즈까지 차례로 제압하고 한국시리즈(KS)에 올랐다. 불펜에 이영하(24·두산 베어스)가 있어서다.

삼성과 PO 2차전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고 있는 두산 이영하. [연합뉴스]

삼성과 PO 2차전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고 있는 두산 이영하. [연합뉴스]

이영하는 올해 정규시즌에 부진했다. 35경기에서 78과 3분의 2이닝을 던져 5승 6패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6.29를 기록했다. 2019년 17승을 올려 두산의 국내 에이스로 떠올랐지만,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5승에 그치면서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 아쉬움을 올가을의 역투로 만회하는 모양새다. 이영하는 순위 경쟁이 치열했던 정규시즌 마지막 일주일 동안 6경기에서 9와 3분의 2이닝 동안 공 124개를 던져 두산이 4위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진짜 '가을야구'가 시작되자 더 힘을 냈다. 키움과 WC 1차전에서 3분의 1이닝, 2차전에서 1과 3분의 1이닝을 각각 소화했다. LG와 준PO 1차전에서도 1과 3분의 2이닝을 책임져 승리의 디딤돌을 놓았다. PO 진출을 확정한 3차전에선 아예 경기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2회 말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4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낸 덕이다.

쉼표 없는 강행군이 힘들 만도 한데, 이영하는 고개를 저었다. "올가을엔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내가 선발진에서 잘했다면, 팀이 WC전이나 준PO를 치를 필요도 없었을 것 아닌가"라며 "공을 던질 기회가 올 때마다 그런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른다"고 했다.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PO 2차전에서도 그랬다. 이영하는 5-0으로 앞선 3회 초 1사 1·3루 위기에서 선발 김민규(2이닝)와 불펜 최승용(3분의 1이닝)에 이은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오재일의 유격수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을 밟았을 뿐, 3과 3분의 2이닝 동안 안타 2개와 볼넷 1개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버텼다. 이영하가 힘껏 뿌리는 최고 시속 152㎞ 강속구에 삼성 타선은 추격 의지를 잃었다.

그 사이 두산 타선은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9점 리드를 잡았다. 외국인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가 4안타 타점으로 공격을 이끌었고, 하위 타선에선 강승호가 3안타 2타점으로 기세를 이었다. 경기 전 "우리 팀은 '한 방'이 있다. 앞선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타자) 형들이 점수를 뽑아줄 때까지 버티면 된다"던 이영하의 믿음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1차전 승리로 1승을 확보했던 두산은 그렇게 2차전도 11-3으로 이겨 7년 연속 KS 진출을 확정했다. KBO리그 역대 최장 기록이다. 2015년 부임한 김태형 감독은 재임 7시즌 동안 매년 두산을 KS로 이끌었다.

반면 삼성은 1승도 올리지 못하고 6년 만의 가을야구에 마침표를 찍었다. 에이스 백정현이 1과 3분의 1이닝 5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고, 두 번째 에이스 원태인(1과 3분의 2이닝 2실점)은 0-5로 뒤진 상황에서 뒤늦게 투입됐다. 초반부터 두산에 빼앗긴 흐름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두산 베테랑 투수 이현승은 "이영하 같은 후배들을 보면 멋지고 부럽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역할이 주어졌을 때, 나도 저렇게 잘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라며 "우리 팀 선수지만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봄·여름의 '애물단지' 이영하가 두산의 가을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두산은 1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시작되는 KS에서 정규시즌 우승팀 KT 위즈와 우승을 놓고 맞붙는다. 두산의 '기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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