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본령으로 돌아가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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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앞으로 보안사령부는 국방부 장관이 장악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돼야 한다』는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의 퇴임사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국군 보안사령부는 국방부 직할부대다. 편제상 상급 국가기관장의 장악을 받지 않았다면 그동안의 보안사는 누구의 지시에 따라 활동해왔는가.
사실 과거의 보안사는 막강한 힘으로 군 내외에 군림해오면서 국방부 장관의 통제 영역을 훨씬 벗어나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유신 때인 77년 3군 보안부대를 통합한 「국군 보안사령부」로 되면서 보안사는 국방부 장관을 뛰어넘어 「대통령의 직속기관」처럼 군림해온 것이 사실이다. 민간인에 대한 정치 사찰이나 동향파악은 물론,타부처 행정기능까지 통제하는 막강한 힘을 행사해오지 않았는가.
더구나 10ㆍ26 이후에는 5공정권을 창출해냈고 두 사람의 사령관 출신이 대통령으로 진출하게 돼 국방부 장관의 「장악할 수 없었다」는 말이 과거 같았으면 수긍할 수 없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6공정권이 출범하면서 기회있을 때마다 민주화시대에 맞춰 제2창군정신으로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고히하고 이를 위해 보안사는 군관계 고유업무에만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들어 온 우리는 아직도 보안사가 「국방부 장관의 장악하지 못한 예하부대」로 군림해왔다는 사실을 놀라워 하는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민간인 사찰은 바로 그같은 변칙운영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새삼 말할 것도 없이 민주화시대의 군대란 민주주의 제도에 충실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군대다.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법에 따라 움직이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외형상의 편제가 다르고 내용상의 기능이 다른대로 두고 군의 민주화를 이야기해왔다면 그것은 빈말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더 나아가 「사태」 이후의 당국자의 이 문제에 대한 현실인식에 당혹함을 감출 수가 없다.
신구 국방부 장관이 한결같이 이번 일로 드러난 보안사의 월권보다는 도망병에 의한 서류유출에 비중을 두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구 장관의 말대로 「특수정보부대의 기강이 면사무소만도 못했다」든지,「이등병 하나가 국가조직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그 부대조직의 기강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당국의 자세는 통제권 밖에서 이루어진 월권행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서슬 퍼런 기강도,물샐틈 없는 단속도 불법과 월권이 자행될 때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사태의 철저한 규명을 다시 한번 촉구해볼 필요를 느낀다.
국방부 자체조사도 물론 있어야겠지만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이나 그밖의 외부의 객관적 규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종구 신임 국방부 장관의 『보안사는 국방부 장관의 철저한 통제하에 있게 되어 있는데도 과거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는 철저히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말을 기억해두고자 한다. 그렇게 될 때 보안사의 군무전념의 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3공과 5공을 거치면서 우리가 보아온 것 같은 군 통수권자의 통치수단으로서의 정보이용 관행탈피가 선행돼야 하며,보안사 자체의 체제개편과 체질개선도 검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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