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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부, 사학 대상으로 벌이려는 ‘오징어 게임’ 중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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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노찬용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

노찬용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

행정안전부는 지난 10월 29일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교육용 토지에 대해서는 분리과세를 적용하고, 교육용 이외 모든 학교법인의 수익용 토지는 유형별로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합산과세를 적용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사립학교 법인의 수익용 자산은 기본적으로 설립자가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설립규모에 걸맞는 기본재산을 무상으로 기부해 출연한 것이다. 이 수익용 자산에서 얻어진 수익금은 그의 80% 이상을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출금으로 학교로 보내야 한다고 사립학교법에 규정되어 있다.

수백억 세금 더 물리는 방안 추진
교육투자 줄면 등록금 인상 불가피

그런데 행안부의 개정안대로 수익용 자산에 합산과세를 하게 되면 재산세는 물론, 종합부동산세가 증가하게 되어 수도권의 큰 규모 대학법인의 경우 매년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까지 추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 시행령이 통과될 경우 전국의 사립학교가 납부해야 되는 세금 총액은 약 5800억원가량 증가하게 된다.

자산을 굴려 수익을 내서 대학에 보내야 할 자금을 세금 납부에 충당하게 된다면 교육에 대한 투자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학생들의 교육 여건이 나빠지고 어쩔 수 없이 등록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또한 학부모들의 부담이 늘어나고, 전 국민들이 부담하는 교육세 인상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같은 사립대학들의 사정에 대해 행안부는 학교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유휴용 토지(교육용이든 수익용이든)를 내년부터 당장 처분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복잡한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 논리에 불과하다. 대학설립 운영기준에 근거해서 잉여분의 자산이 있다 해도 기본자산을 처분하게 되는 경우, 굳이 수익이 많은 것부터 매각할 이유가 없으므로 수익 발생이 없는 자산부터 매각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학교가 필요 없는 자산은 남도 필요 없기 때문에 처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행안부 안대로 이 법령이 개정되면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수익성이 좋은 자산부터 처분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는 법정부담금 형태로 전출하여 학생들에게 돌아갈 교육목적 자금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세금이라는 무기를 남용해 사학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려는 행안부의 처사는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연상케 한다.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이 교육을 받아서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선각자들이 사재를 출연하여 설립한 것이 사립학교다. 실제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뤄 ‘선진국’에 포함될 수 있게 된 데에는 사립학교의 숨은 공로가 적지 않다. 그런 사립학교의 공로는 인정하지 않고 세금 폭탄으로 무차별 공격하여 교육기관의 죽음을 앞당기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때마침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 등 10인의 의원들이 기존 지방세법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는 교육기관 소유 토지 분리과세의 근거를 지방세법에 규정하고, 1995년 12월 31일 이후 소유한 토지도 분리과세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발의(7월 20일)하였다(의안번호 11606, 11608). 따라서 유기홍 의원 등 10인의 의원들이 입법 발의한 지방세법이 국회에서 의결될 때까지 행안부의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을 중지할 것을 사립대 법인 대표의 자격으로 강력히 건의한다.

전국 교육기관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학교는 해방 이래 수십 년간, 전 국민을 교육하는 데 온 열정을 다해오고 있다. 사립학교 전체 구성원들이 맘껏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안정된 교육의 장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국가의 책무라 생각한다.

노찬용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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