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주안의 시선

완성 단계 이른 ‘검찰 수사력 완전 박탈'

중앙일보

입력 2021.11.0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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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수사는 타이밍이다.’

조은석 전 법무연수원장은 수사 기법을 정리한 책『수사 감각, 범죄가 검사를 지나치게 하지 말라』에서 타이밍이 성패를 가른 사례를 지목했다. 대검은 2014년 12월 8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관할 검찰청을 파악했다. 시민단체가 이틀 뒤 서울서부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자 곧바로 고발인 조사를 한 뒤 압수수색 계획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 이를 알아차린 법무부가 질책했지만, 검찰은 수사팀을 출발시켜 미국 현지와 국내 사이에 오고 간 이메일 확보에 성공했다. 조 전 부사장 구속 등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반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남편이었던 정윤회 씨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땐 압수수색 타이밍을 놓쳤다. ‘그때 태블릿PC와 청와대 문건을 확보했으면 국정농단을 사전에 방지했을 것’이라고 자책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부터)·이재명 경기도지사·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연합뉴스·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부터)·이재명 경기도지사·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연합뉴스·뉴스1]

요즘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벌이는 대선 주자 관련 수사는 타이밍을 짚어보기조차 민망하다. 성남의 ‘대장동 특혜 의혹’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지 보름 넘도록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관공서가 공문서를 파기할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초반에 들어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대검의 ‘고발 사주’ 수사를 담당한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의 체포 영장이 기각되자마자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가 연거푸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온통 ‘성명불상자’로 채워진 섣부른 영장은 비난을 자초했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차라리 체포 영장을 재청구했으면 발부 확률이 올라갔을 것"이라고 했다.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뉴스1]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밥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1.10.26. [뉴스1]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뉴스1]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밥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1.10.26. [뉴스1]

두 사건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타깃이라는 점에서 대선을 대하는 수사 기관의 태도가 엿보인다. 계속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성남시 압수수색에 늑장을 부린 이유는 지난달 10일 끝난 민주당 경선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많다. 대조적으로 공수처는 일찌감치 대검을 압수수색하고 손 검사를 압박 중이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투표는 오늘(1일) 시작한다.

이게 문재인 정부 수사권 조정의 결과다. 검찰이 정권의 명에 거역하자 여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였다. 윤 전 총장이 물러나고 청와대 신임이 두터운 김오수 총장이 취임하자 검수완박 얘기는 잦아들었다. 올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때 조연으로 밀렸던 검찰은 이제 다시 수사의 중심에 섰다. 고교 선후배 라인업(박범계 법무부 장관,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을 향한 정권의 믿음이 느껴진다. 문제는 역량이다. 코드 인사를 몇 번 거치니 최약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사 능력ㆍ의지 바닥 드러낸 검찰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창밖으로 던진 휴대전화와 함께 날아갔다. 유 전 본부장을 구속할 때 적시했던 배임 혐의가 공소장에선 사라지고 거액의 뇌물 혐의를 적용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의 구속은 무산됐다. 이때마다 "애초 허술하게 배임 혐의를 포함한 게 문제"(전직 고검장), "이렇게 황당한 뇌물 영장은 처음"(전 지청장)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재소환돼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재소환돼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옆 동네에서도 힐난이 들린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주 신임 공수처 검사들에게 “검찰이 권력 관련 사건 수사를 함에 있어서 하명 수사, 봐주기 수사 등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고 말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에게선 "강제수사와 관련해 일선에서 불만이 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경찰이 추적하던 유 전 본부장의 휴대전화를 검찰이 가로챘다는 의혹이 불거진 시점이다. 총장 교체 후 수사권을 지켜낸 검찰이 ‘검찰 수사력 완전 박탈’이라는 새로운 ‘검수완박’에 직면한 형국이다.

대안도 없다. 수사권 확보가 숙원이던 경찰은 막상 권한을 주자 쩔쩔맨다. 비리 의혹을 코앞에 둬도 수건으로 눈을 가린 사람처럼 "안 보인다"며 허공에 팔을 젓는다. 택시 기사가 폭행당했다고 신고해도,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화천대유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통보해도 딴청이다.

공수처도 무력, 권력 비리 무방비

검찰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공수처는 실력과 신뢰의 결핍 상태다. 경찰은 권력자에게 맞서는 DNA가 퇴화했음이 확인됐다. 다음 정부는 수사권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이 후보는 검찰총장 직선제를 화두로 던졌다. 홍준표 의원은 공수처 폐지를 내걸었다. 윤 전 총장이 되면 태풍이 불 듯하다.

여당이 강행 처리한 공수처법은 당초 여야 합의 정신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비리 권력에 더없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준 현 정부의 수사권 조정을 방치해선 안 된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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