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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내민 손을 박근혜가 잡았더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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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사회 에디터

강주안 사회 에디터

조국 법무부 장관은 검찰 개혁을 해낼 수 있을까. 버거워 보인다. 그는 신뢰가 손상됐다. 그의 최고 자산은 말과 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재인의 운명』에서 조 장관을 극찬한 것도 『진보집권플랜』 출간이 계기가 됐다. 그가 남에게 쏟아낸 독설의 비수는 그러나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2010년에 쓴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에는 오늘을 예언한 듯한 대목이 나온다. 이를테면 ‘45살의 조국이 54살의 조국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까.

조국 장관 임명으로 극심해질 갈등 #검찰개혁 칼 뺐지만 잘 해낼지 의문 #더 심각한 건 사회의 분열과 증오

그는 당시 청문회를 두고 ‘논란이 시작될 때 깨끗이 자진사퇴했어야 했다’(신재민 후보자) ‘이 부부의 이런 부동산 재테크는 벼룩의 간을 내먹는 행위’(이재훈 후보자)라고 일갈했다. ‘준법성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 그리도 없단 말인가’라고 추궁하는 ‘45살의 조국’에게 ‘54살의 조국’은 ‘잘 모른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고 답한다.

조국 장관이 쓴 책의 일부분

조국 장관이 쓴 책의 일부분

그는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포장돼있지만 검증 과정은 그의 역량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딸 표창장 의혹을 폭로한 최성해 동양대 총장과 통화를 했다. ‘증거 인멸 시도’가 떠오르는 행위다. 부인이 연구실에서 컴퓨터를 들고간 것도 마찬가지다. 그의 부인은 ‘PC를 쓰기 위해’라고 해명했지만 함께 데려간 한투증권 PB센터 직원조차 외장하드나 USB를 생각 못했다는 건 어색하다.

서소문 포럼 9/10

서소문 포럼 9/10

조 장관의 전직은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인사검증과 대통령 친인척 관리 책임자로서 매년 재산등록을 한다. 그런 그가 장관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가족과 친인척이 관련된 논문·표창장·장학금·사모펀드·웅동학원 의혹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능력이나 도덕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조국 장관이 쓴 책의 일부분

조국 장관이 쓴 책의 일부분

그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사람들조차 개인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이런 인물평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조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는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고, 부와 지위가 대물림되는 적나라한 특권사회의 모습은 청년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주었습니다.’ 그를 옹호해온 여권 인사에게 솔직한 생각을 묻자 “나도 그가 법무부 장관을 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당이 저러는 상황에선 밀고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둘로 쪼개진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를 살린 셈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분열 양상은 참담하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완전히 갈라져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동양대 총장의 표창장 폭로 기사에 달린 네이버와 다음의 댓글은 정반대였다. 네이버엔 조 장관 비난 글이, 다음엔 조 장관 옹호 댓글이 상위를 휩쓸었다. 막말은 더 심각하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을까. 돌이켜보면 김대중 정부 때까지만 해도 네티즌의 비난은 읽을 만했다. 항의 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쓰기도 했다. 요즘 댓글은 입에 담지 못할 험담과 욕설이 가득하다. 한일관계가 최악이라지만 진보와 보수가 쏟아내는 저주의 막말을 보면 상대 진영을 일본보다 더 증오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조 장관 임명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조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조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검찰 개혁을 말했다. 검찰에선 조 장관 임명 강행을 두고 “사법 방해다” “국정원 댓글 수사 때보다 더하다”는 분노가 감지된다. 검찰 안팎에선 장관이 못버틸 것이라는 추측과 총장이 다음 인사에서 만신창이가 되리라는 예상이 난무한다.

 얘기 나누는 조국 민정수석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조국 민정수석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왼쪽)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 참석, 대화하고 있다. 조 수석은 조만간 단행될 개각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2019.7.25   scoop@yna.co.kr/2019-07-25 10:28:40/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얘기 나누는 조국 민정수석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조국 민정수석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왼쪽)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 참석, 대화하고 있다. 조 수석은 조만간 단행될 개각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2019.7.25 scoop@yna.co.kr/2019-07-25 10:28:40/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은 조 장관을 임명하면서 “자칫 국민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우리 사회가 극단의 분열로 빠져든 시작점을 특정하기 어렵지만 치유의 계기를 놓친 일은 선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2005년 6월)이다. 총리와 장관 상당 수를 야당에 맡기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거부했다. 여권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점에 던진 꼼수로 간주했다. 대연정 제안을 거부한 뒤 항복 선언을 받은 듯 의기양양하던 한나라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을 되돌려 노 전 대통령이 내민 손을 박 전 대통령이 잡았다면 우리 사회의 반목도, 두 사람에게 닥친 비극적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노 전 대통령이 야당에 손을 내민 건 취임 2년 4개월차 때다. 문 대통령은 지금 취임 2년 4개월차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통해 청문회와 대학입시의 문제점을 절감했다지만 더욱 심각한 건 우리 사회의 분열과 증오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강주안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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