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조폭ㆍ외국 자본도 군침 흘린다, 쓰레기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 21일 오후 2시쯤 경북 의성군의 야산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공터가 나온다. 주변은 숲이 울창하지만 이곳은 초목이 사라지고 플래카드와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놓여있다. 바닥을 보니 온통 쓰레기 잔해물이다. 2019년 초 CNN에서 보도해 국제 망신을 당한 ‘쓰레기 산’ 현장이다. 이후 국비 185억원등 289억원을 투입해 폐기물을 치워나갔다. 최근에야 쓰레기가 모두 정리됐다.

지난 21일 오후 경북 의성 '쓰레기 산'이 있던 장소에 불법폐기물이 치워졌다. 이곳은 2019년 CNN이 보도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지난 21일 오후 경북 의성 '쓰레기 산'이 있던 장소에 불법폐기물이 치워졌다. 이곳은 2019년 CNN이 보도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7~8년 전부터 폐기물 업자가 쓰레기를 실어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인근 주민 김 모 씨는 “매일 쓰레기를 실은 트럭들이 일대에 줄지어 있었다”며 “주민들 우려가 컸는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심각성이 외부로 알려진 건 2018년 12월에 불이 나면서다.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면이 약해져 붕괴가 일어났고 재난관리기금이 투입됐다.

<경기, 경북 질식시킨 불법 폐기 현장> #파주 등 전국 370곳에 불법 쓰레기 #국제 망신 의성 쓰레기산 겨우 정리 #필리핀 수출 물의로 외국행도 막혀 #값 치솟자 국내외 투자자들 눈독

예산이 배정됐지만 엄청난 쓰레기를 어디로 버려야 할지도 막막했다. 각종 폐기물이 섞인 쓰레기에서 재활용품을 선별하는 기술을 적용하면서 그나마 양을 줄였다. 씨아이에코텍 조일호 사장은 “쓰레기양이 너무 많아 소각과 매립을 할 경우 처리 시설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온갖 폐기물이 섞인 쓰레기에서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골라내는 기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상당한 분량을 시멘트 공장 연료 등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인근 소각장과 매립장으로 보내 처리했다.

지난 21일 오후 김미자 의성군 환경과장이 '쓰레기 산'의 폐기물을 처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21일 오후 김미자 의성군 환경과장이 '쓰레기 산'의 폐기물을 처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주안 기자

김미자 의성군 환경과장은 “이곳이 정상적인 자연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원 작업이 필요하다”며 “폐기물에 대한 교훈을 남길 수 있도록 환경 교육 시설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조폭도 달라붙는 쓰레기=경북 의성의 한적한 시골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태가 일어난 뒤 환경부가 전국을 대상으로 파악에 나선 결과 370여곳에 불법 쓰레기가 쌓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장곡리의 야산 기슭에 불법 투기된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장곡리의 야산 기슭에 불법 투기된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강주안 기자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오후 4시쯤 쓰레기가 불법 투기된 경기도 파주시 장곡리 현장을 찾아갔다. 한 야산 아래 높은 담장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방치돼있다. 쓰레기 더미를 살펴보니 배출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타이어ㆍ필터 같은 자동차용품에 냉장고, 밧줄, 신발, 천 쪼가리 등이 섞여 있다.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파주 삼릉이 인근에 있고 주변에 통행이 빈번한 이 동네에 쓰레기가 쌓이게 된 경위는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불법 업자들이 땅 주인을 속여 빌린 뒤 전국에서 쓰레기를 가져왔다. 트럭 운전사에게 "불을 끄고 작업하라"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순식간에 쓰레기를 끌어모았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면 톤당 25만원까지 주고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사업자에게 접근해 싼 값을 받고 쓰레기를 실어왔다. 돈을 받고 쓰레기를 실어와 버려두면 되니 간단한 돈벌이다.

경북 의성의 경우 쓰레기양이 20만여톤으로 집계됐다. 톤당 10만원씩만 받아도 200억원이다. 쓰레기를 쌓을 장소만 확보하면 돈을 끌어모을 수 있다. 쉽게 돈이 들어오니 범죄자가 꼬인다. 환경부는 국회 토론회에서 "폐기물 불법처리 사업에 조직폭력배 등이 결탁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쓰레기는 이렇게 돈을 매달고 위치만 이동한다. 전국을 돌다 누군가 날벼락을 맞는다. 파주의 경우 땅 주인 김 모 씨가 궁지에 몰렸다. 보증금 7000만원에 월세 1800만원으로 토지를 빌려줬다가 수십억원에 이르는 쓰레기 처리 비용을 떠안게 됐다. 김 씨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처리 비용을 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경북 의성의 쓰레기 산은 세금을 내는 국민이 처리비용을 댄 셈이다.

경북 의성군 ‘쓰레기산’에 폐기물이 쌓여 있던 모습. [대구지검 의성지청]

경북 의성군 ‘쓰레기산’에 폐기물이 쌓여 있던 모습. [대구지검 의성지청]

◇하남ㆍ화성시 벌써 할당량 넘겨=정상적인 쓰레기 처리 방식은 단순하다. 재활용품을 모으고 나머지는 태우거나 땅에 묻는다. 문제는 소각장과 매립장이 모두 부족한 현실이다. 처리장 증설이 어려워지면서 처리 단가는 계속 올라간다. 대량으로 나오는 사업장 쓰레기가 불법 투기의 주요 대상이지만 일상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폐기물도 벼랑 끝으로 가고 있긴 마찬가지다. 서울ㆍ인천ㆍ경기의 생활 쓰레기를 처리하는 수도권매립지를 2025년에 운영을 중단한다고 인천시가 공언했다. 2018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기초단체별로 쿼터량을 할당했다. 그런데 벌써 올해 할당량을 거의 채운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와 화성시는 4월 말 기준으로 올해 할당량을 넘겼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관계자는 "할당량을 넘어서면 더 비싼 수수료를 내야 하며 내년에 반입 중단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지금까지 2~3일 단위로 취한 반입중단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내년부터 5~10일 중단 등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하는 시나 구에는 일정 기간 쓰레기가 쌓이는 등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쓰레기 압박이 심해질수록 가격은 오른다. 수도권 매립지의 경우 톤당 약 7만원까지 오른 상태다. 내년엔 8만7608원으로 올리고 2022년엔 9만 7963원으로 인상한다. 수도권 매립지에서 가격을 올리면 일반 사업장 폐기물을 처리하는 업체의 단가도 연쇄적으로 올라간다.

쓰레기를 처리할 땅과 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쓰레기를 받아주는 곳만 있다면 돈을 얹어서 보낸다. 국내를 돌아다니던 쓰레기가 급기야 동남아로 향했다. 그러다가 2019년 필리핀에서 큰 망신을 당했다. 한국에서 재활용 쓰레기라고 보낸 것이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라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필리핀 정부와 환경 단체가 강력히 항의하면서 쓰레기를 다시 한국으로 실어왔다. 불똥은 이미 필리핀 야산 등에 옮긴 한국산 쓰레기로 튀었다. 필리핀 정부는 기존에 반입한 쓰레기도 전부 가져가라고 압박했다. 환경단체가 공개한 사진엔 필리핀 야산에 한국에서 보낸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의성 쓰레기 산을 연상시킨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외국자본ㆍ대기업ㆍ대선 주자 관심=외국행까지 막히면서 소각이나 매립 시설을 확보한 폐기물 업체의 수익이 늘고 있다. 주민 민원으로 신규 사업장 설치가 어려워지면서 기존 업체를 인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돈의 행방에 민감한 외국계 자본이 이를 놓치지 않는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쓰레기는 정부 지원까지 여러 경로로 수입이 생긴다”며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외국계 자본에 이어 국내 사모 펀드도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ESG 바람을 타고 대기업도 손을 뻗고 있다. 업계에선 SK 건설을 주목한다.

지난 13일 오전 11시쯤 인천 서구 수도권 매립장에 생활폐기물ㆍ건축폐기물 등을 실은 트럭이 줄지어 온다. 쓰레기를 쏟아내고 빠져나가면 다음 트럭이 올라온다.지금 사용 중인 제3-1 매립장은 2025년에 용량이 꽉 찬다. 이때부턴 서울과 경기에선 쓰레기를 보내지 못한다.

수도권매립지에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차례로 쓰레기를 쏟고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수도권매립지에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차례로 쓰레기를 쏟고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이날 오후 2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선 주민지원협의체 위원장 취임식이 열렸다. 공사 임원이 총출동했다. 국민의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등이 끝나고 단상에 오른 김동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잃어버린 주민의 권한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쓰레기 처리가 국가적 난제가 되면서 대선 주자에게도 자주 불똥이 튄다. 필리핀 쓰레기 사태 때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한판 붙었다. 필리핀 쓰레기가 평택에 반송되자 이 지사는 이 중 일부가 제주에서 왔다며 원 지사를 겨냥했다. 한 차례 사과했던 원 지사는 "평택은 아니다"고 맞섰다. 조사를 진행하자 제주산 쓰레기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이번엔 원 지사가 이 지사를 공격했다. 이 지사가 사과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왼쪽)과 원희룡 제주지사(오른쪽) [중앙포토]

이재명 경기지사(왼쪽)과 원희룡 제주지사(오른쪽) [중앙포토]

수도권매립지 운영에서 서울의 발언권이 약해진 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통 큰 양보’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2015년까지 수도권매립지 지분은 서울시가 71.3%, 환경부가 28.7%를 보유했다. 2016년 말 매립지 종료를 두고 논란이 일자 당시 유정복 인천시장, 남경필 경기지사와 협의해 매립면허권과 관련 토지 소유권 전체를 인천시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2025년 이후 인천시가 서울ㆍ경기 폐기물을 안 받겠다고 선언하면서 다시 쓰레기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다. 쓰레기 육지 반출로 곤욕을 치렀던 원희룡 지사는 4년여 고생 끝에 동북 매립장을 확보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벌써 올해 할당량을 넘겨 내년에 반입 중단 조치를 당할 위기에 처한 하남시ㆍ화성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갓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매립지 지분도 없는 상태에서 해결책을 내야 한다. 쓰레기 문제를 풀지 못하면 의외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