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아들 고교 때까지만 내가 살았으면…" 독일 병원 찾는 아빠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00:34

업데이트 2021.09.07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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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부 규제에, 코로나에 죽음 문턱 몰린 희귀암 환자〉 

희귀암 환자 황원재씨(가운데)는 세 살 아들 시온이가 “아빠 아파?”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정부가 치료제 수입을 허가해 국내서 치료 받기를 갈망한다. 강주안 기자

희귀암 환자 황원재씨(가운데)는 세 살 아들 시온이가 “아빠 아파?”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정부가 치료제 수입을 허가해 국내서 치료 받기를 갈망한다. 강주안 기자

경북 구미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황원재(35) 씨에겐 큰 소망이 있다. 아들 시온(3)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살아남아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는 5년 전 "남은 시간이 3~6개월"이라는 말과 함께 희귀암인 신경내분비종양 진단을 받았다. 수술도 치료도 어려운 병이다.

"암 진단 불과 1년 전 결혼한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이 한 달간 울기만 했습니다. 자살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더군요.”

큰 병원들에 다니며 백방으로 수소문해 독일에서 개발한 ‘루타테라’ 치료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엔 수입 허가가 안 돼 말레이시아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효과가 컸다.

외국 의약품 수입 막혀 해외서 치료 

문제는 이 병은 완치가 안 돼 잘 듣는 요법으로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 루타테라의 효과가 떨어져 다시 방법을 찾던 중 독일의 ‘악티늄’ 요법을 알아냈다. 그러나 이 역시 수입 허가가 안 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와중에 독일 행을 준비 중이다. 악티늄 수입만 허락되면 한국 의료 기술로 치료하긴 어렵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의 얘기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는 "암 환자에게 쓰는 ‘미사일 요법’은 오래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악티늄만 들여오면 치료는 어렵지 않다”며 “그러나 정부에서 허가가 안 났기 때문에 환자들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 고통받는 희귀암 환자는 한두 명이 아니다. 해외로 나가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암이 악화하면 또 출국하는 힘겨운 투병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더 극한 상황을 만들었다.

의약품 수입 규제 때문에 말레이시아와 인도ㆍ독일(왼쪽부터) 병원을 다니며 암 치료를 받은 황준모 씨. [사진 황준모 씨]

의약품 수입 규제 때문에 말레이시아와 인도ㆍ독일(왼쪽부터) 병원을 다니며 암 치료를 받은 황준모 씨. [사진 황준모 씨]

대기업에 다니던 황준모(43) 씨는 3년 전 같은 진단을 받았다. 2019년 말레이시아로 갔다. 루타테라가 잘 안 들었다. 악티늄에 희망을 걸고 지난해 2월 인도로 향했다. 인도는 독일에서 악티늄을 들여올 수 있다. 치료를 받고 인도 한적한 동네에서 잠시 머물던 중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했다. 한국 교민회의 도움으로 탈출하다시피 가까스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악티늄은 효과가 컸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추가 치료를 못 받았다. 종양이 다시 악화했다. 지난 7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코로나19 출입국 차질로 증세 악화

말기 암 환자가 12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대기업에 다니는 강호덕(46)씨는 몇 년 전 말레이시아 치료로 호전돼 희망을 찾았다. 올 초 갑자기 병세가 악화했다. 악티늄 치료를 받기 위해 독일로 가고 싶었지만 장기간 비행을 감당할 컨디션이 아니었다. 부인 이재경(39)씨는 지난달 16일 통화에서 "남편이 나갈 수 없어 너무 안타깝다"며 "빨리 (악티늄) 수입이 이뤄져 치료를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만드는 희귀암 치료제 원료를 갈망하는 환자가 많은데 왜 못 들여오는 것일까. 지난 3일 오후 2시쯤 충북 청주의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찾아갔다. 정문 앞에선 시위가 한창이다. "자영업자 살려내라"는 플래카드 문구가 눈을 붙든다. 정말로 죽음 문턱에 선 희귀병 환자들은 정부의 선처만 바랄 뿐 큰 소리도 못 낸다.

문은희 식약처 의약품정책과장은 "환자 단체와 간담회도 하며 방법을 모색한다"며 "식약처장 허가를 안 받고 들어올 수 있는 약도 정해놨다"고 설명한다.

 여당서 개선 법안 냈으나 기약 없어

식약처는 특히 의료 선진국에서 임상 시험 중인 의약품은 정식 허가가 나기 전에도 말기 암 환자 등에게 쓸 수 있도록 한 약사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과 협력해 지난해 12월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말기 암 환자가 아픈 몸으로 해외를 전전하는 어려움을 덜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법안은 통과가 되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이 법안 통과 전에라도 주요 국가에서 임상 시험 중인 약은 허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에 신청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문 과장은 "악티늄은 우리에게 요청이 없어서 몰랐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ㆍ일본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위스ㆍ캐나다 등 8개국에서 임상시험 대상 의약품은 사용할 수 있다는 공문을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등에 보냈다. 악티늄은 독일에서 사용하는 치료제인데 왜 못 들어온 것일까.

서울대 강건욱 교수는 “식약처가 말하는 임상시험은 정부 승인 임상시험을 말한다”며 “이는 주로 제약회사가 해당 의약품을 시판하기 위해 진행한다”고 설명한다. 강 교수는 “그러나 희귀병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어 제약회사들이 안 나선다”면서 “이런 사정 때문에 독일에서 생산한 악티늄은 정부 차원이 아닌 연구자 임상시험을 거쳐 이미 치료에 널리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는 ″정부가 악티늄 수입만 허용하면 치료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강주안 기자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는 ″정부가 악티늄 수입만 허용하면 치료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강주안 기자

독일은 정부가 공인한 의료 선진국이다. 악티늄은 독일 병원에서 치료에 사용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허가 요건과 안 맞는다는 게 의료계 판단이다. 결국 환자들이 독일로 가서 치료를 받거나 악티늄을 들여와 치료하는 인도 등지로 갈 수밖에 없다.

악티늄 수입 허가 요청이 없어 몰랐다는 당국의 설명에 환자들은 답답해한다. 황준모 씨는 “암을 통보받은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선 어떻게 치료할지 막막할 뿐”이라며 “어떤 의약품을 수입해서 어떻게 치료할지를 환자한테 신청하라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식약처를 방문한 직후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문은희 과장은 “해당 내용에 대해 알아본 결과 두 가지 트랙이 있다”며 “현행 제도를 넓게 해석하거나 다른 규정을 만들든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 연구소에서 악티늄 임상시험 계획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한국의 과학ㆍ의학 기술은 세계 수준이다. 악티늄 자체 개발도 추진할 만하다. 다만 우리 위상에 걸맞은 희귀병 정책 부재로 안타까운 환자가 치료 기회를 잃는다는 의견이 나온다. 어린 나이에 실명(失明)하는 선천적 망막 질환이 대표적이다. 방송에 출연해 울림을 줬던 이소정 양이 앓는 병이다. 한 해 3~4명의 어린이가 이 병으로 앞을 못 본다. 국내 의료진이 치료의 단서를 찾았지만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서울대병원 안과 김정훈 교수팀은 프라임 교정기를 이용한 치료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막히고 환자 개인의 기부를 받는 것도 제도적으로 허용이 안 돼 답답한 상태다. 조동현 교수는 “눈 치료에 성공하면 다른 질환으로 확산이 가능한데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양의 모친은 “외국서 이뤄진 사례가 우리는 막힌다는 얘기를 들을 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같은 병을 앓는 박모군의 모친도 “아이가 앞을 볼 수 있다면 뭐든 다 하겠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희귀암 치료 과정을 위해 해외로 간 사람들은 국격의 혼란을 경험한다. 황원재 씨는 말레이시아에 도착해 병원행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병원에 왜 가냐”고 물어 “치료받으러 간다”고 하니 “북한에서 왔느냐”고 물었던 일을 떠올렸다. 황준모 씨는 “인도 병원에 가니 혈압 재는 방식부터 수십 년 전 한국 병원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비용도 환자들의 고통을 가중한다. 전립선암 투병 중인 남편이 독일에서 두 번 치료를 받은 곽 모 씨는 “한 번 갈 때마다 4000만원 넘는 비용이 들었다”면서 “병원비도 비싸지만 독일어를 못하니 추가로 드는 돈이 상당하다”고 했다. 곽 씨는 “제가 아는 사람만 4~5명이 독일에 가서 치료받는다”며 “왜 국내에 못 들여오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강건욱 교수는 “제약 회사 위주로 된 의약품 수입 허가 기준을 희귀질환이나 말기 암 환자에겐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김정훈 교수팀은 “희귀 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상업적 투자나 지원을 받기 어렵다”며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취재 진행 중 세 아이 아빠는 하늘로

식약처에서 악티늄 국내 치료를 두 갈래로 모색하겠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질 즈음 예상치 못한 전화가 왔다. 강호덕 씨가 결국 가족 곁을 떠났다는 비보(悲報)였다. 지난달 통화에서 “약 수입이 허가돼 한 번이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던 부인 이재경 씨에게 지난 4일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두 애는 어려서 아직 잘 모르고 (11살) 큰 아이에게 ‘아빠가 하늘나라 가면 안 아프대’라고 했더니 ‘안 아프면 하늘나라에 있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면서 “아이가 ‘아빠 다 나으면 올 수 있어?’라고 물었다”고 전했다.

‘취재했던 내용을 보도해도 괜찮겠냐’는 질문에 “저희 신랑은 안타깝게 못하고 간 건데, 저 같은 사람 없게끔 빨리 도입하라고 해달라”고 말했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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