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100명 집단 감염 훑고 가도 서울 곳곳 '노 마스크' 지하도 살이

중앙일보

입력 2021.08.03 00:35

업데이트 2021.08.0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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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달 27일 오후 9시 45분쯤 서울 남대문 지하도. 입구에 들어서자 1945년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도라는 근사한 안내판이 보인다. 서울 미래유산이라는 문구도 붙었다. 그런데 안으로 몇 계단 내려가자 줄지어 누운 노숙자들이 나타난다. 대부분은 마스크를 안 썼다. 앉아서 음식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지하도 가운데엔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다. 안에는 오줌으로 보이는 액체가 들어있다.

서울 남대문 지하도에 있는 안내문.

서울 남대문 지하도에 있는 안내문.

밤이 되면 서울 남대문 지하도는 노숙자 집단 숙소가 된다. 강주안 기자

밤이 되면 서울 남대문 지하도는 노숙자 집단 숙소가 된다. 강주안 기자

다음날 낮에 찾아가 보니 노숙자가 있던 공간에 여성 의류가 진열돼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박선희 씨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장사가 힘든데 노숙자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며 "이들의 용변 냄새 때문에 손님이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박 씨는 "경찰에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더 힘겨운 노숙자
확진자 명동, 충북으로 이동하기도
선불폰 등 추적 통해 길에서 발견
백신 사각지대 놓인 거리 노숙자
라파엘 나눔, 협력 통한 접종 추진

노숙인 집단 숙소 된 '서울미래유산' 
날이 저물 무렵 인근 남산 지하도를 돌아봤다. 노숙자 수는 조금 적었지만 노 마스크로 누운 사람들 틈으로 행인이 다니는 모습은 흡사했다. 입구 쪽으로 나오는데 한 노숙인 남성이 지하도 벽에 소변을 보고 있다. 조금 떨어진 서울역 지하도 비슷하다. 곳곳에 붙은 ‘역사 내 노숙 금지’라는 경고문이 무색하다. 인근 빌딩으로 이어지는 통로마다 노숙자가 누웠다.

한 노숙자가 남산 지하도 벽에 소변을 보고 있다.

한 노숙자가 남산 지하도 벽에 소변을 보고 있다.

지하도 영상을 감염병 전문가인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에게 보여줬다. 이 이사장은 "이분 중 확진자가 있다면 감염의 위험이 굉장히 높다"며 "이 폐쇄구역에서는 바이러스 노출이 심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몇달 전 서울역 노숙자 사이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 한 노숙인이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코로나 검사를 확대한 결과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을 국립중앙의료원 등 코로나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작전이 벌어졌다.

확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떤 노숙인은 활동 반경이 엄청나다. 아침은 인천, 점심은 서울 청량리에서 먹고, 저녁은 경기도 수원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노숙인 전담 경찰관인 서울역파출소 박아론 경위가 명동까지 달려가 확진자 한 명을 찾기도 했다. 박 경위는 "당시 방역복을 입고 출동해 만취 상태로 명동에 있던 노숙인 확진자를 발견했다"며 "119에 지원을 요청해 치료를 받게 했다"고 말했다. 일부 확진자는 충청북도까지 갔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들이 ‘선불폰’ 등을 갖고 있어 위치추적이 가능했다고 박 경위는 설명한다.

전문가 "노숙인, 시민 감염 위험"
한바탕 확진 태풍이 휩쓸고 갔지만, 노숙자들의 불안한 일상은 계속된다. 서울시는 지난 4월부터 취약계층인 노숙인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진행해 보호 시설이나 쪽방촌 등에서 지내는 사람 대부분이 백신을 맞았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인은 상황이 판이하다. 홈리스 행동은 지난 6월 거리 노숙인 1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접종했다는 응답자가 29.7%뿐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또 이들로 인해 일반 시민이 감염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사회 각계에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그러나 노숙자 특성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크다.

지난달 26일 열린 홈리스 정책에 관한 웨비나에서 정원오 성공회대 교수는 한동안 줄던 거리 노숙인이 2019년 39.2 % 늘었다고 발표했다. 서울 주요 지역 곳곳에 노숙인들이 모여든다. 용산역 텐트촌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역 인근에 노숙자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나섰다. 용산역 주변은 최첨단 고층 빌딩이 둘러섰다. 아무리 돌아봐도 홈리스들이 보이지 않는다. 행인들에게 물어봤으나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역 미화원 사무실을 찾아가 물으니 "역 뒤쪽에 있는데 찾기가 힘드니 그쪽에서 다시 물어보라"고 알려줬다. 역 뒤편을 돌아다니다가 작은 계단을 발견했다. 그 밑으로 내려가니 역으로 진입하는 도로 아래에 텐트가 보였다. 여기저기 쌓인 쓰레기 옆에 텐트가 설치됐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첨단 고층 건물이 둘러선 서울 용산역 인근에 시민들 눈에 잘 안 띄는 노숙자 텐트촌이 있다. 강주안 기자

첨단 고층 건물이 둘러선 서울 용산역 인근에 시민들 눈에 잘 안 띄는 노숙자 텐트촌이 있다. 강주안 기자

앉아서 술을 마시던 두 남성을 발견하고 "여기에 몇 명 정도가 지내느냐"고 물었다. 한 남성은 "40명 정도 있다"며 "코로나 백신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놔줬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이 동네 살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며 "박원순 시장 때는 6개월씩 일자리를 줬는데 오세훈 시장이 된 뒤론 일자리도 잘 안 준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25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뒤편 옛 계성 여중고 운동장 자리에서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명동 밥집'과 라파엘 나눔이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를 찾은 노숙자 등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7월 25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뒤편 옛 계성 여중고 운동장 자리에서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명동 밥집'과 라파엘 나눔이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를 찾은 노숙자 등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강주안 기자

코로나 사태는 의료 서비스에서도 취약 계층을 궁지로 몬다. 공공 의료기관과 보건소 등이 코로나 관련 업무에 투입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진료에서 소외된다. 지난달 25일 오후 2시쯤 서울 명동성당 뒤편 옛 계성 여중·고 운동장 자리에 노숙자 수백명이 모였다. 한쪽에선 김정환 신부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 ‘명동밥집’에서 배식을 하고, 다른 쪽에선 라파엘 나눔재단이 진행하는 무료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스탠드에 앉아 기다리던 노숙인들이 밥집에서 번호를 부를 때마다 식당으로 향했다. 진료 봉사에 참여한 이상기 아시아엔 대표가 진료 대기 번호를 부르자 부지런히 움직인다.

지난 7월 25일 오후 옛 계성 여중고 운동장 자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자 무료 진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 25일 오후 옛 계성 여중고 운동장 자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자 무료 진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무료 진료소는 외국인 진료 봉사를 진행해온 라파엘이 코로나 상황에 신음하는 노숙인들을 위해 지난 6월부터 운영해왔다. 라파엘 나눔 상임이사인 안규리 서울대 명예교수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고혈압ㆍ당뇨 등 지병 치료를 위해 찾는 사람과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노숙인 등 80명 정도가 이날 진료를 받았다. 양복 차림의 한 노숙인은 감염이 심한 발을 치료해달라고 했다. 의사는 "상처가 심각한데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건 소독밖에 없다"며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후 노숙자 진료 봉사에 나선 의사들이 의료활동을 하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25일 오후 노숙자 진료 봉사에 나선 의사들이 의료활동을 하고 있다. 강주안 기자

소독을 받은 뒤 진료소를 떠나며 그는 "얼마 전에도 병원에 입원해 봤지만, 길거리로 나오니 다시 도졌다"며 "무조건 병원에 가라는 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남산의 한 공원에서 지낸다는 그는 "애초부터 K방역이 잘못됐다"며 "백신을 빨리 공급해야 했는데 거리 두기만 집착한 게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 같은 사람까지 백신 맞기는 참 힘들다"고 했다.

발 염증이 심각한 노숙자가 자원봉사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 [라파엘 나눔 제공]

발 염증이 심각한 노숙자가 자원봉사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 [라파엘 나눔 제공]

무료 진료소에선 크고 작은 소동이 이어졌다. 진료를 시작할 무렵 한 여성이 "저 사람이 새치기를 했다"며 고함을 쳤다. 상대방이 "원래부터 여기 있었다"고 맞서면서 고성이 오갔다. 잠시 뒤 대기석이 술렁였다. 한 할머니가 재단에서 나눠 준 일회용 손 소독제를 먹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둘러싸고 걱정했지만,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진료를 받으려 대기 줄에 선 할머니에게 "진짜 괜찮으시냐"고 묻자 "소독약이니 보약을 먹은 셈"이라며 웃는다. 그의 나이는 90살이라고 한다.

라파엘 나눔의 임만택 후원회장은 "진료를 받을 때 물어보면 백신을 안 맞은 노숙자들이 꽤 많다"며 "이분들을 위해서도, 다른 시민들을 생각해서도 접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안규리 명예교수 등이 국립중앙의료원과 협력해 길거리 노숙자의 접종을 다음 주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노숙자 설문 결과 집이 없는 이들은 백신 접종 후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 관계자는 "서울시 노숙인 임시주거지원사업과 연계해 접종 뒤 숙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숙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듣고 기피하는 경향 등 인권 문제로 인해 예방 접종을 강제할 수 없는 한계도 극복해야할 과제다. 안상협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회복지사는 "거리 노숙인 중 예방접종을 받지 않겠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분들의 니즈를 고려해 보호 체계를 세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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