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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이명박ㆍ박근혜 네거티브의 비극적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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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맨 왼쪽), 이재명 경기도지사(가운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연합뉴스ㆍ뉴스1ㆍ뉴시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맨 왼쪽), 이재명 경기도지사(가운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연합뉴스ㆍ뉴스1ㆍ뉴시스]

“천추의 한을 남기는 거예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전날인 2007년 8월 18일 오전 박근혜 후보를 찾아가 ‘이명박 후보(MB)가 당선되면 어찌 되겠느냐’고 묻자 섬뜩한 얘기를 했다. 이 말은 10년 뒤 현실이 됐다. 그러나 MB보다 5년 더 긴 징역형을 선고받을 자신의 운명에 대해선 일말의 근심을 엿볼 수 없었다.

대선을 반년 남짓 앞두고 이재명ㆍ윤석열ㆍ이낙연 후보를 조준한 네거티브 폭격이 매섭다. ‘혜경궁 김씨’라는 고전적 표현부터 ‘쥴리’ ‘옵티머스’ 같은 글로벌 어휘까지 탄두의 스펙트럼이 넓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말 폭탄이 14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그때도 비방을 난사했다. 치열했던 전투는 MB의 승리와 박 후보의 승복으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때 남겨진 불발탄이 훗날 핵폭탄이 될 줄이야.

다스ㆍ최순실 의혹 집중 공격 받아

지난 27일 박지원 국정원장은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을 사과했다. 국정원이 대선판을 요동치게 한 대표적 사례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부친 최태민 목사 관련 문건이다. 박 후보는 MB  측이 해명을 요구할 때마다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MB는 다스로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는 “이런 네거티브가 한국 정치사에 있었는가”라고 한탄했다. 차례로 청와대 주인이 된 둘은 재임하는 동안 두 사안을 비밀리에 계승, 발전시켜 더 무서운 변종으로 만들어냈다. 왜 이런 어리석은 일을 벌였을까.

청와대 입성 뒤 오히려 문제 키워

두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사람들의 얘기는 대체로 일치한다. 선거 과정을 무사히 넘기면 취임 이후 참모가 이슈를 재론하기 어렵다. 두 대통령 모두 극소수의 최측근에게만 다스 및 최서원씨 관련 업무를 맡겼다. 재임 내내 어찌나 결백을 강조했는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측근이 있다. MB 청와대 출신 정치인은 “다스가 MB 소유라는 법원 판단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도 “유치원을 운영했던 최씨가 연설문 몇 군데를 쉬운 표현으로 손질했을 뿐, 국정 농단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를 수사하면 ‘선거 개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확인 작업 이외에 조사를 확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되면 수사는 멈춘다. 대통령은 내란ㆍ외환의 죄 이외에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진짜 수사는 청와대 퇴거 후 개시된다. MB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 4년간 안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함께 허물어졌다.

대통령 퇴임 전후 검찰 수사 달라 

MB는 검찰뿐 아니라 BBK 특검 수사까지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이미 범죄 단서가 보였다는 얘기가 검찰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권력자에 대한 재수사는 기본적인 과거 자료와 관련자 진술이 이미 압수 수색 등을 통해 확보돼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파일에 보이는 약한 고리를 파고들면 힘 빠진 전직 대통령은 방어하기 어렵다. ‘금고지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구속하고 다스 여직원 등을 불러 추궁하자 새로운 진술이 쏟아졌다.

승자가 독식하는 한국 정치 풍토에서 대선 네거티브를 피하긴 어렵다. 선거 전문가인 커윈 스윈트 조지아 주 케네소 주립대 교수는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이 효과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다른 사안보다 쉽게 기억한다는 것”(『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이라고 했다. 대권을 좇는 자의 불행은  “문제를 제기하신 분들은 네거티브하다 말면 그만이다”(MB)는 착각에서 싹튼다. 선거에 이겨 권좌에 오르면 내려오는 날까지 검찰은 눈을 감고 있다. 사나운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에 군림하는 문재인 정부는 더 그렇다. 경고음에 귀를 기울일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현 정부 내내 빈자리다. ‘언론징벌법’까지 가세해 입을 틀어막는다. 앞으로 닥칠 비극을 예방하는 모든 백신을 거부하는 기저 질환자와 다를 바 없다.

지금 난무하는 네거티브가 훗날 어떤 변이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대선 주자들은 권력 감시를 무력화한 일련의 흐름을 경계해야 한다. 백신 무용론에 심취한 대선 주자가 있다면 네거티브를 경시했다가 영어(囹圄)의 몸이 된 박 전 대통령의 일기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를 펴보라.

‘돈 1억원을 뇌물로 받고 쇠고랑을 차는 사람을 본다. 일생 쌓아온 모든 것이 폭삭 꺼지고 마는 순간이다. (중략) 인생의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 아까우랴 싶을 것이다. 신용과 깨끗한 명예는 이처럼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인데, 일이 막상 터지기 전에는 깨닫기가 그토록 힘든 진리인가 보다. 1991년 10월 19일.’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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