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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에 앗긴 항해사의 꿈/커누 3관왕으로 한풀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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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북경대회 제패 “오뚝이” 천인식/“기록경신만이 내삶의 목표였어요”/고2때 대표돼 패들만 저어
『마침내 원을 풀었습니다.』 소아마비의 역경을 딛고 북경대회에서 한국 최초의 3관왕에 오른 한국커누의 간판스타 천인식선수(22ㆍ한체대4)는 감격에 목이 메었다.
신체의 결함을 이기기 위해 웃음마저 잊은채 이를 악물고 황금빛 물살을 갈라온 각고의 노력이 아주제패로 꽃을 피운 것이다.
중국의 독주를 막고 한국커누에 아시안게임사상 첫 금메달을,그것도 3개씩이나 안겨준 천선수는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선 오뚝이 인생의 표본.
경남 통영앞바다의 작은섬에서 태어난 천선수의 어릴적 꿈은 원양어선의 항해사가 되어 오대양을 누비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산조양국교 1년때 왼발 소아마비증세를 비롯한 각종 병마가 덤벼들며 소년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고 한번 마음먹으면 꼭 해내고야 마는 고집스런 고수머리 소년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이후 말수가 적어진 대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오히려 활동적인 운동에 전념,틈틈이 배구에 열중하기도 했다.
소아마비를 앓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복싱을 시작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천선수가 커누에 입문한 것은 부산 해양고에 입학,「인생은 끝없는 도전」이란 문병섭코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부터다.
조정부에 입단했다 곧 두팔을 쓰는 커누로 전공을 바꾸면서 비로소 뚜렷한 인생의 목표를 지니게 된 천선수는 「보다나은 기록을 위해 정진하는 인생」을 삶의 목표로 세우고 보이지않는 기록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경쟁자를 상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와 인내를 시험하며 손이 부르트도록 패들을 젓는 고독하고도 처절한 도전이었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천선수는 고2때인 85년 전국체전 고등부 카약 1인승 5백m 우승을 필두로 각종 국내대회를 휩쓸기에 이르렀다.
86년 고교생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그는 기량이 일취월장,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카약 1인승 1천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국커누계에 보랏빛 희망을 안겨주며 북경대회 금메달을 예약했었다.
1m84㎝ㆍ78㎏의 거구로 텁수룩한 수염의 그는 그러나 3관왕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전에 이유를 밝히기를 거부하는 공식은퇴를 선언,파문을 던지고 있다.
보다나은 기록을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말수가 적은 그는 한사코 입을 다문채 총총히 자리를 떴다.<북경=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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