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정치중립 빈말이었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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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군관계 정보수집과 수사 임무를 맡은 국군보안사령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정치사찰과 개인별 동향파악을 여전히 계속해오고 있다는 보도에 접하면서 우리는 충격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것은 첫째로 88년 6공 출범 이후 막대한 국력을 소모하면서 청산하려 했던 5공 잔재가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 숨쉬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 때문이다.
5공청산은 군사정치문화 청산이 큰 줄기였고 정권 창출의 배경이 되었던 군의 정치적 중립선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과정의 국회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 6공정부는 「군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화 방안의 하나로 보안사의 업무를 재정립,민ㆍ관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지양하고 군 내부의 대간첩작전ㆍ정부전복 정보수집 활동으로 그 임무를 조정하기로 했다」고 다짐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10ㆍ26 이후 전두환 사령관이 12ㆍ12와 5ㆍ17을 주도하면서 정권을 장악해온 과정을 알고 있는 우리는 군의 정치적 중립이 보안사의 정치 불간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보안사도 6공 출범 이후 줄곧 「군사관련 특수정보 수집 등 고유업무 외의 정치사찰이나 대민 수사는 일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오지 않았는가.
둘째로 우리가 받은 충격은 이번에 폭로된 보안사의 사찰이 김영삼ㆍ김대중ㆍ이기택씨 등 정치지도자는 물론,김수환 추기경,언론인까지를 포함한 각계 인사를 망라하면서 그들의 도주로ㆍ은신처ㆍ용모 특징까지를 조사해 마치 위험인물이나 범죄인 취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담장의 높이가 어떻고 집 내부 비상구가 있고 없다는 등 안방까지 파악되고 있다는 데는 분노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6공정부가 그토록 다짐해온 민주화는 다른 것은 고사하고라도 기본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뜻하며 그것은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되는 것을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 우리가 받은 세번째 충격은 6공 아래의 군 정치사찰이 정당 내부의 권력투쟁에까지 개입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에 대한 것이다. 여당의 대표최고위원까지도 사찰의 대상이고 동향파악이 필요한 인물이라면 과연 신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당인 민자당에서까지도 유독 자파 인사만이 사찰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민주계에서는 지난 4월 「공작정치 청산」을 역설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벼른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는 여기서 군당국과 6공정부에 대해 우선 몇가지 해명을 요구할 필요를 느낀다.
무엇보다도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들여 군기관 본연의 업무도 아닌 민간인을 대상으로 정치사찰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민간인에 관한 한 범법의 우려가 있다면 국내사안인 경우 경찰이,해외 또는 대북 사안이라면 안기부가 있지 않은가. 군기관의 민간인 사찰의 법적 근거와 그 용도가 명명백백하게 해명돼야 한다. 전시나 비상시에 대비했다는 어설픈 변명은 해명이 될 수 없다.
또 우리는 6공정부가 다른 것은 몰라도 민주화만은 정착시키겠다고 해온 그동안의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묻고 싶다. 민주화를 위한 정치는 정보정치나 공작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인권이 보장되도록 하는 정치임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정부당국은 이번 일을 통해 제기된 의혹을 겸허한 자세로 해명함은 물론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내 지위고하를 불문,문책하고 정치권은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여야 함께 나서야 옳다. 한치의 의혹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이같은 노력을 게을리할 때 6공 정권 아래의 정부나 정치인은 다함께 국민의 불신을 사고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임을 지적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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