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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코로나 일자리" 3억 쓴 경기도, 대북전단 줍기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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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경기도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나랏돈 3억3000만원을 들여 접경 지역 주민 40여명을 지난해 9월부터 석 달간 순찰 활동에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업은 관련 근거가 될 수 있는 대북전단금지법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실시된 데다, 사업의 필요성 자체가 논란거리라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 단체장이 있는 인천광역시ㆍ강원도와 달리 경기도만 이같은 사업을 진행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30일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경기도는 지난해 9~11월 ‘대북전단 살포 방지 상시감시단’이라는 명목으로 4개 접경 시ㆍ군(파주ㆍ김포ㆍ포천ㆍ연천)에서 이같은 사업을 벌였다. 이와 관련, 경기도 측은 대북전단 살포 사례를 반영해 감시단 활동 지역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지난해 9~11월 ‘대북전단 살포 방지 상시감시단’이라는 명목으로 4개 접경 시ㆍ군(파주ㆍ김포ㆍ포천ㆍ연천)에서 총 40명이 전단 살포 예상지를 순찰하고 떨어진 전단을 확인하는 등의 사업을 벌였다. 사진은 감시단이 ″환경 정비″를 하는 모습이라고 경기도는 밝혔다. 사진 경기도

경기도는 지난해 9~11월 ‘대북전단 살포 방지 상시감시단’이라는 명목으로 4개 접경 시ㆍ군(파주ㆍ김포ㆍ포천ㆍ연천)에서 총 40명이 전단 살포 예상지를 순찰하고 떨어진 전단을 확인하는 등의 사업을 벌였다. 사진은 감시단이 ″환경 정비″를 하는 모습이라고 경기도는 밝혔다. 사진 경기도

감시단의 주 임무는 각 시ㆍ군이 특정한 예상 지역을 순찰하며 대북전단을 보내는지 감시하고 혹시 떨어진 전단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시ㆍ군별로 10명씩 총 40명을 선발했는데, 여기엔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와 관련, 경기도 측은 “접경 지역 주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취업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는 국비 2억4000만원과 도비 1억1000만원 등 총 3억50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실제 집행된 비용은 3억3000만원으로 이 중 90%가 넘는 3억원이 인건비였다.

지난해 8월 감시단 모집 공고에 따르면 참가자의 급여는 1인당 월 216만원(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만근 기준), 연차수당과 명절 휴가비(지난해 10월 1일이 추석)는 따로 지급됐다. 이를 토대로 경기도는 “접경 지역 일자리 창출 40명”을 성과로 내세웠다.

'불법' 아닌데 '불법'이라 홍보 

이와 함께 “대북전단 살포 방지 감시를 통한 사업 기간 중 불법 살포 행위 0건”을 실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감시단 활동으로 전단 살포를 막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정부 내에서도 “역설적으로 전단 한장 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때만 해도 관련 근거라 할 수 있는 대북전단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지난해 12월 14일)하기도 전이었다. 다만 경기도는 지난해 6월 "대북전단 살포자의 출입과 행위를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상황이었다.

지난해 6월 17일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포천시의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 이민복 대표의 집을 방문해 대북전단 관련 물품 반출 금지를 알리는 ‘위험구역 설정 및 행위금지 행정명령(대북전단 관련 물품 반출 금지) 통지’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경기도

지난해 6월 17일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포천시의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 이민복 대표의 집을 방문해 대북전단 관련 물품 반출 금지를 알리는 ‘위험구역 설정 및 행위금지 행정명령(대북전단 관련 물품 반출 금지) 통지’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경기도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실제로 행정명령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니까 관련법을 만든 것 아니냐"며 "경기도 측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일 뿐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인천ㆍ강원도에선 하지 않은 일을 경기도만 벌였단 점에서 이재명 지사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인 계산까지 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지난 6월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단 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담화를 낸 직후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인 법안이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김여정 하명법’이란 비판을 쏟아냈다.

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에 항의 서한(지난 4월 19일)을 보내는 등 국제사회의 반발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지난 5월 21일 경기도가 주최한 ‘2021 DMZ 포럼’에서 “남북이 합의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며 “(대북전단금지법은) 폭력과 군사 대결을 초래하는 표현의 방식을 제한함으로써 더 많은 자유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 둘째)가 지난해 6월 24일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대북전단 살포 관련 탈북민단체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 둘째)가 지난해 6월 24일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대북전단 살포 관련 탈북민단체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지난 3월 말 시행에 들어간 대북전단금지법에 따르면 전단 살포 등 남북합의서(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위반 행위를 하는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한기호 의원은 “국제적인 망신만 산 대북전단금지법이 나오기도 전에 다른 지자체에선 하지도 않는 전단 줍기에 나랏돈을 갖다 썼다”며 “국민 혈세를 선심성으로 낭비하고도 홍보하는 행태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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