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권 위원장의 입장도 다급해졌다. 9일 권 부총리 및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과 함께 순환출자에 대한 정부안을 결론지을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서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조용히 있는 것 같지만 그동안 물밑에서 공정위에 규제 수위를 낮추라고 계속 요구해 왔다"며 "공정위 방안대로만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처 간 합의에 성공하더라도 다음 관문으로 당정협의가 남아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마련한 규제안의 강도가 높은 데다 '이중 족쇄'라는 비난이 거세 쉽게 도장을 받아낼지 의문이다.
권오승 위원장이 권오규 부총리에게 제시한 규제안은 순환출자 금지에 더해 기존의 출총제까지 사실상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기업 그룹을 이중으로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정위와 권 위원장은 "순환출자를 꼭 규제하겠다"면서도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재계가 "순환출자가 출총제보다 센 규제"라며 반발했고, 산자부도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며 강하게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환출자와 중핵기업을 뒤섞는 이중 규제 속에서 당초 약속한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는 게 재계 반응이다.
일단 공정위는 새로운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대신 이미 이뤄진 순환출자는 인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공정위 이동규 사무처장은 "몇몇 대그룹은 시간만 주면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고 밝혀 왔지만 현대차 등은 해소가 어려워 처분 주식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자발적 해소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공정위가 기존 출자분 해소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또 피라미드.방사 형태 등의 비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해선 중핵기업 규제방안을 마련했다. 자산 2조원이 넘는 기업들이 순자산의 25%를 넘어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행 출총제는 자산 6조원 이상인 14개 대그룹의 463개 계열사에 적용되지만, 이를 중핵기업 규제로 대체하면 36개의 개별 대기업으로 대상이 줄어든다. 하지만 36개 기업이 전체 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르는 만큼 사실상 출총제 간판을 유지하는 셈이다.
김준술 기자
◆환상형 순환출자='A기업→B기업→C기업→A기업'처럼 꼬리를 물고 출자가 이어지는 구조. 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여러 계열사를 보유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