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함락 1주 전…대통령은 잔디밭에서 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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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간 대통령. AFP=연합뉴스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간 대통령.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정부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수도 카불을 장악할지 몰랐다고 미 매체 월스트리스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간 대통령은 카불이 함락되기 일주일 전인 지난 7일 법무장관 등 관료들과 모여서 회의 일정을 소화했다. 회의가 끝난 후 그는 대통령궁에 있는 잔디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가니 대통령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프간은 무너지고 있었다. 탈레반은 7일 이란과 접경지역에 있는 님루즈주의 주도인 자란즈를 점령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탈레반이 이 지역을 장악하자 약 3000명의 주민들은 이란으로 피난을 떠났다. 이날 탈레반은 자우즈얀주의 주도 셰베르간도 점령했다.

8일에는 북부 지역의 3개 주도인 쿤두즈, 사르에풀, 탈로칸이 점령됐다. 인구 37만명의 쿤두즈는 수도 카불 등 주요 도시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 이날 미 대사관은 미국인들이 아프간을 최대한 빨리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탈레반은 12일 카불 남서쪽 150km 지점에 위치한 가즈니주의 주도 가즈니를 점령했다. 이날 카불에서는 가니 대통령이 회의를 소집했다. 이때 아프간 대통령이 사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정국이 요동쳤다.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카불의 프랑스 대사관 밖에서 출국하려는 아프간인들이 앉아 있다. AFP=뉴스1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카불의 프랑스 대사관 밖에서 출국하려는 아프간인들이 앉아 있다. AFP=뉴스1

13일 카불은 패닉 상태였다. 도시는 인근 지역에서 탈레반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정부군은 거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탈레반은 우리 형제"라는 대화를 나눴다. 14일에는 카불 동쪽 도시 잘랄라 바드가 함락됐다. 15일에는 카불과 대통령궁이 함락됐다.

가니 대통령은 카불이 함락되기 전 해외로 달아났다. 그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카불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현재 아랍에미리트(UAE)에 있다"며 "아프간의 정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귀국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엄청난 양의 돈을 챙겨 아프간을 떠났다는 의혹에 대해선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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