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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있는 정치」를 원한다|강명구<서울대 교수·언론 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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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의 정치문화를 새삼 확인한다. 현실정치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있으면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버리고 있지 않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통치자중심으로 현실정치의 원리를 해명하려는 노력은 이제 별다른 쓸모가 없는 것 같다. 통치권력의 권위와 정당성확보를 위한 체제유지의 정치학으로는 현실정치에 대한 깊은 절망과 미래에의 기대사이에 가로놓인 간극을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실에의 절망과 극복의 신명이 공존하는 우리 국민의 정치적 심성을 읽을 수 있는 한의 정치학이 요구된다.
우선 중앙일보 창간 25주년기념 국민의식조사에 나타난 절망의 깊이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정치지도자에 대한불신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현재의 정치지도자들을 거부하고 있다.
초선의원 노무현씨(16·6%)가 현직 대통령의 두 배, 제1야당 당수인 김대중씨(10·3%)보다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음은 국민들이 지닌 절망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이것은 한국현대정치가 축적의 역사를 지니지 못하고 파괴의 역사만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륜과 지조를 지닌 지도자들은 정상 배들에 의해 제거되거나 암살되었으며, 군사쿠데타에 의해 총체적 파괴만을 경험했던 것이다. 「노무현 현상」은 경륜과 지조를 쌓을 줄 아는 정치지도자에 대한 갈망의 표현일 따름이다.
둘째, 현실정치는 국민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인식이다. 물가안정·민생치안·빈부격차해소·환경오염·부동산투기억제 등 일상생활의 삶 안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들에 있어 대다수(70∼89%까지)국민들이 좌절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보는 소수의 유한계급을 제외하고는.
생존에 필요한 물질과 자원의 분배는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더욱이 조사결과는 정부의 민생관계정책에 대한 불만이 각 계층의 지나친 욕구 때문이 아니라 정책담당자의 부패와 능력부족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질과 자원의 정의로운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통치권력이 정통성 확보를 위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북방정책, 남-북한 관계개선 등은 정권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에 그칠 위험이 크다. 내부의 모순과 혼란이 외 치의 성과로 가려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의회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다.「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정치기구」가운데 국회는 78% 이상의 국민들로부터 낙제점수를 받고 있다. 정당지지도에 있어서는 국민의 3분의2가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총 선에서 도합 46·5% 국민의 표를 받은 민정·민주·공화당을 통합한 민자당이 10%의 지지밖에 받고 있지 못한 것은 밀실의 야합정치에 대한 냉혹한 평가인 것이다.
이렇듯 의정활동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정치적 허무주의에까지 이르고 있는 듯하다.
또 이는 현대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의 핵심인 의회민주주의의 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으로는 현대적 정당의 저 발전뿐만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의회를「통법부」로 전락시켜 온 독재권력의 횡포를 지적해야 한다.
국회의원 1인당 평균 40명(상원의원은 30∼70명, 하원의원은 20∼30명) 이상의 보좌관을 활용할 수 있는 미국의회를 예로 들것도 없이 행정부의 정책입안과 수행을 감시하고 통제할 능력과 권한이 우리 국회에는 제대로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의회를 제도적으로 개혁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중심제가 어떻고 의원내각제가 어떻고 하는 정치 판(여기에는 이러한 논의를 부추기는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에 대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넷째, 문화적 엘리트의 정치불신 문제다. 일반국민은 정치과정에 대해 직접적인 평가를 할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자·엔지니어·의사·변호사·예술가·고급관리자 등 전문직 문화계층의 정치적 판단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사결과는 이들 전문 자유 직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은 항목들에서 가장 커다란 정치불신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 자유 직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우 기존의 행정기구와 제도들을 가장 크게 불신하고 있었으며(불신점수 2·6), 현직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가장 낮았으며, 어떠한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비율에 있어서도 가장 높게 나타났다.
물질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이들 문화적 엘리트가 거의 모든 정치적 활동과 상황에 좌절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현실정치가 악성질환을 앓고 있다는 징후일 뿐만 아니라 체제 자체의 정당성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인 것이다.
이러한 절망의 정치현실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한국사회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통일정책에 대한 남-북한 정부의 의지와 외세의 장애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85%정도의 국민들이 통일을 낙관하고 있다. 경제발전의 전망에 있어서도 10년 뒤 한국의 모습이 아르헨티나보다는 일본에 가까이 가 있을 것이라는 밝은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급격한 현실의 변화를 원치 않으면서도 힘없는 이들과 덜 가진 이들에게 보다 가까운 감정이입을 보이는데서 알 수 있듯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고 있음도 보인다.
현실정치에 대한 압도적 절망과 미래에 대한 낙관 사이에서 이제 우리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정치는 한국사회를 어떠한 길로 이끌고자 하는가.
조사결과가 확연히 보여주듯 국민들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자들과 권력지망생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스스로 딛고 일어서고자 할 따름이다.
그러나 현실정치가 끊임없이 표류할 때 절망은 분노로 변화할 수 있다. 정치지도자에 대해, 정치제도와 기구에 대해, 정부의 정책실행과 의회정치에 대해 국민들은 이미 분노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분노의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가.
또 하나의 선택은 깊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기대감의 상승에 주목하는 것이다. 한의 심성에 깔려 있는 신명의 힘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미 국민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기본적인 인간적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과 주택과 의료가 보장되고, 인간다운 사회공동체와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요구되는 부의 편중, 지역간 격차, 남북한 사이의 대립이 완화되고 해소된다면, 그리고 자신과 집단의 이해관계와 의견을 표현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참여가 보장된다면 참으로 신명나겠다고.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할 때다. 역사가 혁명을 선택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신명나는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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