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마라토너 환갑' 이봉주 부활 어떻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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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5일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중앙서울마라톤 레이스를 TV화면으로 지켜보던 신필렬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은 무척 조바심이 났다. 2년여 만에 국내 무대에 복귀한 이봉주(36.삼성전자)가 나이를 뛰어넘어 젊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황규훈 육상연맹 전무를 수시로 찾아 "지금 중간기록이면 얼마에 골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발바닥 부상(족저근막염)으로 한동안 훈련을 하지 못한 데다, 만 36세라는 '고령'이 마음에 걸렸다. 황 전무는 "지금 페이스라면 잘해야 2시간12분대가 될 것 같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내심 "12분대는 고사하고 기권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황 전무는 실토했다. 아무리 자기관리가 철저했더라도 마라토너로는 환갑을 넘긴 나이였기에.

골인 뒤 황 전무는 오인환 삼성전자 감독에게 "정말 대단하다. 초반 5㎞ 오버페이스로 기권하는 줄 알았다"며 선전을 축하했다. 대부분의 육상 전문가가 황 전무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면 이봉주는 초반 오버페이스에 따른 에너지 손실을 딛고 어떻게 올 시즌 국내선수 최고기록(2시간10분49초)을 엮어냈을까.

해답은 오인환 감독이 갖고 있었다.

오 감독은 코오롱 시절이던 1994년부터 지금까지 이봉주와 한솥밥을 먹고 있다.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한국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을 세울 때도 코치로 옆에 있었다. 그만큼 이봉주에 대해 잘 안다.

오 감독은 올여름 중앙서울마라톤 출전 계획을 세운 뒤 이봉주 맞춤 훈련에 들어갔다. 전성기 때의 체력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 훈련 강도를 낮추고 휴식을 늘렸다. 예를 들어 연속해서 5㎞를 5번 달릴 경우 전에는 15분10초대에 달리도록 했으나, 이번에는 15분50초로 스피드를 낮췄다. 대신 중간 휴식은 1분에서 4분으로 늘렸다. 한 번에 40㎞ 내외를 달리는 긴 거리 훈련 때도 16분대의 5㎞ 래프타임을 17분30초대로 완화했다.

유엔특별기구인 스텝재단 도영심 이사장이 2006 중앙서울마라톤에서 우승한 제이슨 음보테(29.케냐)를 6일 서울 다동 사무실로 초청, 선전을 축하하고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나이 먹은' 근육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강훈련 뒤 이틀 주던 휴식도 4일까지로 늘렸다. 단백질을 집중 주입하는 3일간의 식이요법도 한 끼를 줄이고 탄수화물로 대체했다. 빠른 체력 회복을 위해서였다.

이 같은 맞춤훈련 덕분에 이봉주는 중반 이후에도 선두권에 근접한 채 당당히 2시간10분대, 5위라는 성적을 냈다. 황 전무는 "37세에 세운 2시간10분49초는 깨지기 힘든 또 다른 한국기록일 것"이라고 칭찬했다. 오인환 감독은 "내년 봄에는 2시간8분대에 도전하겠다"고 말했고, 이봉주는 "나를 추월하는 후배들이 나오지 않는 한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신동재 기자 <djshi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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