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한핏줄”입모은 남북한/이하경 아시안게임취재단(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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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북경은 남과 북의 만남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민족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선수촌에서,경기장에서,기자촌에서,그리고 수많은 한국음식점에서 남과 북은 끊임없이 조우하고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남북을 합쳐 1만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부딪치고 교감하면서 따르는 단일민족의 정서적 공감대를 발견하고,더러는 분단의 장기화에 따르는 이질감으로 실망과 비판을 토해놓는 도시.
그래서 북경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타진하는 실험장이라는 또다른 의미가 주어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23일부터 고도 북경에서 극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남북한 공동응원은 6천만 겨레의 희망과 가능성의 극대치를 보여주는 일대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일국호와 유니폼을 사용한 단일팀이라는 미래의 꿈에 비해서는 한없이 궁색하고 심지어 비장감마저 들게하는 2개국 공동응원단의 출현.
그러나 여타부문 회담의 성과와 전망에 비추어 볼때 공동응원단은 분단과 적대의 청산이라는 세계사적 기운이 최후의 분단지대인 한반도에도 본격적으로 뻗치고 있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살육과 파괴,증오와 적대를 상징적으로 계승한 태극기와 인공기의 대결적 대치구도는 이날 양측응원단이 서로 상대방의 국기를 저항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처음으로 청산되고 있었다.
비록 북이 준비해오기는 했지만 흰바탕에 푸른빛으로 한반도 지도를 물들인 눈부신 단일깃발이 태극기ㆍ인공기와 함께 자랑스럽게 허공을 가르는 감동적인 모습은 분단이라는 부끄러운 질서를 마음껏 비웃는 통렬한 일격이었다.
통일을 온몸으로 희구하는 6천만 겨레의 강렬한 소망이 마디마디 맺혀있는 『우리의 소원』. 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정직하게 함축한 『아리랑』. 『우리의 소원』과 『아리랑』의 합창은 극적으로 진행된 한국현대사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겨레의 하나됨에 결코 훼손될 수 없는 남북모두의 엄숙한 지향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아직은 넘어야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더 많지만 1990년 이역의 도시 북경에서의 감격적인 민족교류는 언젠가는 열리고 말 통일시대의 서막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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