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수재논의의 본말전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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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는 지난 17일부터 3일간 건설위 등 5개 상임위를 열어 수재대책을 논의했다. 야당측이 불참한 가운데 계속된 5개 상위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정부측의 고식적인 대응태도와 의원들의 타성적인 문제 접근태도에 다같이 깊은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65년 만의 대재앙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면 정부와 국회는 보다 비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재발방지책과 조기복구책의 강구에 논의의 최우선점을 마땅히 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측이나 의원들은 이와는 달리 이번 수재의 성격규명에 초점을 둔 듯한 방향으로 상임위 회의를 운영하는 종전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조속한 수재대책을 갈망해온 수재민들에게 허탈감만 더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이번 수재의 성격규명은 물론,앞으로의 수재재발의 대비책과 수재민에 대한 보상대책의 강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수재의 대형화에 대한 원인규명작업은 관계기관과 학계가 공동으로 조사하고 있는만큼 하루 이틀에 결과가 나올 사안이 아니며 이미 일이 벌어진 다음이니 성급히 서두르기보다는 차분하게 철저한 규명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민자당의원들은 수재가 천재냐,인재냐는 문제만 집중 거론했고 정부측은 아직 원인규명이 안된 상태임에도 인재가 아닌 불가항력의 천재라는 예단적 강변으로 시종했다.
심지어 내무장관은 수방관리의 책임은 건설부 소관이라고 책임관할권의 소재를 떠넘기는 데만 급급,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자기변명에만 신경을 썼다.
특히 지역구 수재민을 의식한 일부 의원들이 본질적 문제점보다는 심증에 따른 유언비어성 질문에 비중을 두어 수재 치유에 뜻이 있다기보다는 멍든 수재민들의 감정에 영합하려는 자세를 보인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18만여명의 이재민을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수재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하는 데에 정부와 국회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가 아닌가.
추석에 이어 곧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 이재민들이 바깥에서 떨지 않게 하는 복구 만큼 더 중요한 일이 없음에도 이번 상임위 활동에서는 이에 관해 별 논의가 없었다. 정부와 여당의원들의 무신경에 아연할 뿐이다.
그리고 의원들은 이번 수재의 피해를 더하게 만든 수방체계상의 난맥상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문제제기와 접근에는 소홀했고 정부측 역시 이번 수재는 기상관측의 낙후성,수문관리체제의 난맥성,행정부내 관리체제의 할거주의 풍토 등으로 피해를 한층 늘린 측면이 강했는데 이에 대한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개선방안이 무엇보다 심도깊게 논의됐어야 했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제도를 개선하고,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라면 예산을 배정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 수재를 이기는 근본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엄청난 재난을 다룬 이번 국회의 무성의한 측면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금 야당측이 하루빨리 국회에 복귀,국민의 가려움증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내실있는 대책마련에 여당과 같이 앞장서는 자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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