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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군단 "가자, 그림시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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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달 서울대 출신 작가의 그림.조각을 일괄 60만원에 전시.판매한 ‘60만원 전’에 3만여명의 관람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중앙포토]

"예상치 못했던 일이예요. 홍대 앞인데도 중년 아저씨 아주머니가 몰려드네요. 이 작품은 얼마냐,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떤 게 있느냐며 질문하고 기록하고 고민하고…."

서울 홍대 인근에 위치한 갤러리 잔다리의 송희정 큐레이터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젊은 작가의 작품 170여점을 100만원 안팎의 가격에 전시.판매하는 행사에 일반인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이곳을 들른 주부 문성애(48.서울 반포동)씨는 "친구 모임에 나가면 요즘은 부동산뿐만 아니라 미술 투자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저렴한 제품부터 사볼까 해서 들렀다"고 말했다.

경기는 바닥인데 미술 시장은 때아닌 활기를 띠고 있다. 정부 규제로 부동산 투자가 발이 꽁꽁 묶인데다 주식시장 마저 악재가 겹쳐 유동자금이 미술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최근 몇년새 그림 값이 껑충 뛰자 '그림이 돈이 된다'며 투자로 이어지는 것도 한 요인이다. 최근 미술품을 기증하면 세금 공제를 해주는 법안이 발의돼 미술계는 한층 고무된 상태다.

100만원이면 그림이 내 손에

미술시장의 활기는 저가 작품을 구입하는 '개미 군단'의 움직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3월 노화랑이 연 '작은 그림.큰 마음'전에서 60만~100만원짜리 작품 350여점이 금세 팔려 화제가 됐다. 노화랑은 이에 힘입어 내년엔 삼성동 코엑스에서 중견화가 100명이 각각 50점씩 내놓는 중저가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지난 4월 현대갤러리에서 열린 천경자 전시회에서도 67만원에 한정 판매한 판화 30장이 전시회 시작과 거의 동시에 모두 팔렸다. 지난달 1만5000여 명이 그림 구입을 신청한 서울대의 '60만원'전도 그림을 사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의 관심이 표면으로 드러난 전시였다.

그러나 값이 상대적으로 싸다고 해서 '묻지마 구매'를 해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30여년간 작품을 모아 온 K옥션 김순응 대표는 "그냥 맘에 들어서 집에 걸어둘 요량이면 괜찮지만 투자가치를 생각한다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전시를 돌아다니며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10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투자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장르로 사진과 드로잉을 꼽았다.

미술품 기증하면 세금 공제한다?

외국의 유명 미술관의 대표작들에는 예외없이 기증자의 이름이 붙어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이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작가와 유족이 기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1998년부터 올해 10월까지 기증받은 780점 중 88%는 작가와 유족이 기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하니 미술관은 빈약한 콜렉션으로 허덕이고, 관람객을 끌 만한 마땅한 유인책이 없는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달 20일 이광재 의원(열린우리당)이 '미술품을 기증하면 세금을 공제받는다'는 내용의 법안(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등)을 발의해 미술계가 반색을 표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미술품을 기부할 경우 개인은 소득세에서 기부액의 100%를, 법인은 법인세에서 기부액의 50%를 세액공제해 준다. 개인이나 기업의 미술품 기증이 늘어나면 미술관은 좋은 콜렉션 갖추고, 미술시장 또한 전반적으로 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술품 기증을 탈세수단으로 악용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학고재 화랑 우찬규 대표는 "미국의 경우 기증 작품에 대해 국세청에 소속된 미술자문위원회가 심의를 한다. 우리도 법 시행에 앞서 그런 세부적인 안이 꼼꼼하게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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