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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국제질서와 한반도」 대 토론회/본지창간 25돌 기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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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 통일되면 아­태 주역 될것”/중국의 북한압력엔 낙관ㆍ비관 양론/세계 신질서 전쟁아닌 평화로 돼야
전쟁과 혁명의 세기인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맞은 지금 세계는 반세기 가까이 계속돼온 동서 냉전이 끝나고 평화와 번영의 21세기를 맞을 준비를 갖추고 있으나 한반도의 장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견해가 대두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창간 25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초청,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재편되는 국제질서와 한반도」라는 제목의 대토론에 참석한 세계적인 언론인 4명은 동구변화와 페르시아만 사태가 세계 정치질서를 새로 바꾸어 놓고 있다고 말하고 한반도는 중소의 대 북한 영향력 감소와 북한의 경직된 사회로 인해 새로운 통일의 돌파구를 열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들 언론인들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사회주의 개혁의 물결이 세계에 지진과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시간이 걸릴지라도 분단국토 통일등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변화는 기대할만하다고 견해를 같이했다. 주제발표후 토론에 제기된 이들의 비관론과 낙관적 기대를 토론회 중계형식으로 정리해 본다.<편집자주>
장두성(본사 논설주간)=후세 역사가는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인 90년대를 「격동의 10년」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동유럽의 민주화혁명,베를린장벽 붕괴와 독일통일로 지난 45년 동안 유지돼온 냉전의 구질서는 그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고 붕괴되어 새로운 질서가 구축돼 나가고 있다.
냉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앙드레 퐁텐(불 르몽드지 사장)=세계사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지탱시켜나갈 새로운 세계질서는 아직 정착되지 않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미 공존시대 돌입
특히 이번 이라크 사태로 인해 원활한 기능을 가진 신질서 수립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소련이 유엔주도하의 평화유지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제 레닌­스탈린시대의 소련형 사회주의 제국주의가 끝나고 있음을 뜻한다.
바야흐로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공존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세계 신질서는 전쟁시나리오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평화시나리오하에서의 세계질서 재편과 유엔을 도와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테오 좀머(서독 디차이트지 주필)=최근 국제정세 변화의 특징은 변화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고 아시아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의 변화란 바로 동유럽의 탈공산주의화,소련의 지배로부터의 이탈을 들 수 있다. 지난해 동유럽 6개국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됐다.
이같은 현상은 얄타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EC(유럽공동체)는 유럽통합의 상징적 존재이며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유럽은 하나가 될 것이다. 동유럽국가들은 유럽에 합류할 것이며,이렇게 될 경우 유럽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을 것이다.
문제는 구질서는 무너졌으나 새로운 질서가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 질서가 형성되기까지는 많은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동유럽국가들에선 이기적 민족주의가 크게 대두되고 있는데,비록 과도기라 하더라도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한반도 통일이 숙제
아시아지역에선 아직도 냉전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남북한의 분단ㆍ대립상태,소련­일본간 북방4개도서 영유권 분쟁 등이 그것이다. 아시아에 유럽에서와 같은 안보체제가 자리잡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해리슨 솔스베리(미 뉴욕타임스지 전 부주필)=유럽 보다는 늦었지만 아시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아시아에서 냉전구조가 끝날 경우 아시아­태평양지역은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30년 가까운 중소대립이 지난해 5월 고르바초프의 중국방문으로 해소된 마당에 지금 아시아에 남아 있는 구시대의 숙제는 한반도 통일과 일소 영토분쟁 해결 및 평화조약 체결이다.
내년 4월로 예정돼 있는 고르바초프의 일본방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방일은 비단 소일관계뿐 아니라,극동지역 전체 상황을 변화시킬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고르비 방일 큰 의미
고르바초프는 이번 방일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공짜로 얻다시피한 소위 북방 4개도서의 영유권 문제를 마무리지을 것으로 본다.
좀머=퐁텐씨가 지적한 것처럼 현재 세계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금까진 동서냉전등 체제의 문제가 주된 것이었으나 지금은 남북문제ㆍ환경오염문제 등 새로운 문제들에 더 비중이 두어지고 있는 것이다.
질서란 바로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질서란 과거의 그것보다 더욱 안정되고 평화스런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질서는 강압에 의한 질서가 아니라 지난번 헬싱키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에서 부시­고르바초프가 강조했던대로 전세계국가가 서로 협력하는 평화로운 질서이며,핵무기 균형에 의한 공포의 질서가 돼서는 안된다.
장=한국은 냉전체제속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한 나라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선 냉전의 종식이 선언되고 독일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한반도에는 냉전체제가 상존하고 있으며,남북한 사이에는 지금도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독일에서와 같은 극적 변화가 한반도에서도 가능하리라고 보는가. 또 그를 위한 외부적ㆍ내부적 조건은 무엇인가.
○북한 개혁ㆍ개방 거부
피터 젱킨스(영 더 인디펜던트지 부주필)=독일의 분단이 냉전의 원인이었다면 한국의 분단은 냉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 분단된 한반도는 냉전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독일과 달리 분단의 기원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에서 일어났던 일이 한반도에서도 반복되리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종식은 참으로 중요한 범세계적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으므로 한반도에서도 상당한 기대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동독의 변화에서 물론 소련이 큰 역할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변수는 동독인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와 용기,즉 민주적 정치ㆍ사회체제,여행의 자유 등 개인적 자유의 확대,서독과 같은 경제적 풍요의 갈망 등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런 전제하에서 볼때 북한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를 예상ㆍ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의 개혁ㆍ개방요구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본다.
북한체제가 외부 언론매체로부터 북한 주민을 철저히 차단시켜 놓은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퐁텐=한국과 독일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한에는 소련ㆍ중국군대가 주둔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과정에서 소련이 동독에 가했던 것과 같은 개혁ㆍ개방압력을 소련ㆍ중국이 북한에 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북한이 소련ㆍ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북한은 소련ㆍ중국으로부터 에너지ㆍ원자재ㆍ기계제품ㆍ무기 등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선 소련ㆍ중국이 북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본다.
○중국은 믿을 수 없어
북한의 유엔가입문제에 대해서는 동독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서독은 당초 동독의 유엔가입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가졌다. 서독은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들과는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위협까지 했을 정도다.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이 그것이다.
그러나 결국 동독의 유엔가입을 통해 동독은 더 많이 외부세계와 접촉할 수 있었으며 변화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남한도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좀머=중국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은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나라」「예측불가능한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갖가지 분쟁ㆍ분열이 얽혀 있는 나라여서 정치ㆍ외교노선이 다양하며 일관성을 발견하기가 아주 어렵다.
따라서 중국의 대 한반도정책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중국자신이 그 영향력을 어느 정도까지 사용할 것인가를 판단하기도 매우 어렵다.
소련은 지난해 동독의 변화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소련이 동독에서와 같은 일을 북한에서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엔 「아니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에서도 일정한 변화는 항상 있을 수 있겠으나 동독에서와 같은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지금으로선 북한이 변화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태가 세계무대
솔스베리=지난 수년동안 중국이 한반도문제에 대해 내린 일련의 결정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중국은 소련이 한반도에 대해 내린 결정들과 비슷한 내용의 결정들을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특히 한중 양국간 교역량 증가에 따라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제 남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쪽이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함을 알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도 계속 유지하는 「두개의 한국」정책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이제 소련ㆍ중국으로부터 종래와 같은 원조ㆍ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으며,그들로부터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개선 쪽으로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일성은 그 나이로 볼때 조만간 사망할 것이 분명하다.
김일성이 사망할 경우 북한에는 필연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다.
그때쯤 되면 한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며,그만큼 한반도 통일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21세기 아시아­태평양은 세계사의 주요무대가 될 것이며,통일된 한국은 그 주역의 하나가 될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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