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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시고 달고 짜고 쓰고…맛에 숨은 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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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음식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육류를 먹게 됐는지, 잡식성인 인간이 개인별로 선호하는 음식이 왜 다른 지 등은 그동안 인류학자.생리학자.심리학자 등의 관심 대상이었다. 음식과 인간의 진화.심리에 얽힌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소개한다.[편집자]

도구를 발명하고부터 뇌가 커진 것인지, 아니면 뇌가 커진 덕분에 도구를 써서 육류를 사냥하게 됐는지는 고고학의 영원한 논쟁거리다. 최근 2백60만년 전의 고인류 것으로 보인 가장 오래된 돌 도구가 동물뼈와 함께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며 도구 발명 후 뇌가 커졌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 인디애나대 인류학연구센터 시레시 시모 박사팀은 에티오피아 고나 강 주변에서 발견된 돌 도구를 연구한 결과 2백6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전의 유사인류인 이른바 '호머니드(Hominid:유원인)'가 만든 것이라고 결론짓고, 이를 '인류진화 저널' 최근호에 발표했다.

돌 도구 주변에는 도구를 이용해 먹은 남아프리카 영양과 얼룩말의 뼈가 흩어져 있었다. 연구팀에 참여했던 마이클 로저스 박사는 "도구를 이용한 육류 섭취가 뇌의 크기 진화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은 몸에서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설과, 음식 선호는 심리적인 것일 뿐이라는 설도 팽팽히 대립해 왔다. 1930년대부터 생리학자들은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자연스럽게 입에 당긴다고 주장해 왔다. 이 이론에 의하면 식탐과 식성은 우리 몸의 대사작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인간이 왜 몸에 나쁜 프렌치프라이.콜라.즉석식품을 좋아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소시지.치즈케이크.위스키 등 사람들이 안먹고는 못사는 단골 메뉴 중 일부는 성인병을 불러온다며 영양학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은 것들이다. 반면 시금치와 간 같은 비타민 덩어리들은 대부분의 어린이와 성인에게 외면받는다.

따라서 음식선호는 생리적 욕구와, 심리학적.사회적 요인이 결합된 것이란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 소아과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신생아들은 설탕물을 묻힌 장난감 젖꼭지를 빨게 했을 때는 주사 맞을 때 떼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쓴 맛이나 떫은 맛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부터 거부하기 시작한다는 것. 미국 워싱턴대 건강영양연구소 아담 드루노스키 소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단맛을 좋아하고, 쓴 맛이 들어가면 바로 뱉어내며, 지방은 차츰 자라면서 좋아하게 된다"고 말한다.

미국 모넬 화학감각센터의 줄리 메넬라 박사는 "5~9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고농도의 새콤한 맛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반면 쓴 맛.떫은 맛은 어른들이 선호한다. 특히 성장기와 임신 기간에는 떫은 맛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드루노스키 소장은 "아마도 떫은 맛은 독성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커 떫은 맛을 이 시점에서 거부하도록 진화됐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를 입증하듯 인간의 혀에는 단맛을 느끼는 수용체는 몇개밖에 없지만 쓴 맛을 느끼는 수용체는 60여개에 이른다.

예일대의대 린다 바르토셕 교수팀의 연구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연구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보다 미각이 발달해 있고 특히 쓴 맛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여성이 임신 중에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쓴 맛에 더 민감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여성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쓴 맛을 더 잘 느끼게 되고 특히 임신 중에 민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르토셕 교수는 "폐경기가 되면 쓴 맛에 대한 민감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젊었을 때보다 블랙커피 등 쓴 음료를 더 즐겨 찾게 된다"고 말했다.

남녀 공통으로 나이가 들면 쓴 맛 중에서도 특히 지방이 섞여있거나 달콤함이 섞여있는 쓴 맛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예를 들면 참기름을 넣은 씀바귀 나물이나 취나물, 버터에 볶은 브로콜리 등이다. 드루노스키 박사는 이것도 생리학적으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중년기나 노년기에 먹으면 좋은 항암 성분이 있는 복합물은 대부분 약한 독성이 있고, 떫은 맛이 난다"는 것이다.

혀에서 느끼는 미각은 똑같은데 왜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다를까. 메넬라 박사는 "아주 어릴 때 형성된 입맛이 평생을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메넬라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 한번씩 당근 주스를 마신 임신부가 낳은 아기는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생후 6개월 때부터 당근맛이 나는 이유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모유를 먹는 아기 중 상당수가 마늘.에탄올(알콜)과 바닐라 맛을 엄마의 모유에서 식별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여러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는 엄마의 모유를 먹는 아기가 편식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 프랑스 디종에 있는 유럽미각과학 연구소도 임산부의 뱃속에 있을 때 임산부가 먹은 음식을 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좋아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엄마와 자식 간에도 좋아하는 음식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음식 심리학자 폴 로진 박사는 "가족 간에도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간에 차이가 존재하는 등 음식 선호는 개인의 특이한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한다.

문화적인 요인도 크다. 미 워싱턴대.몽클레어대와 스페인 국립대 공동연구팀은 미국.이집트.스페인 3개국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세계적으로 여자들은 단 것을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내놨다.

이집트 여자들은 이집트 남자들보다는 단맛이 약간 들어간 음식을 좋아했지만 6%만이 초콜릿 등 단 것을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다. 이집트 여자들 대다수는 고기가 들어간 짭짤한 맛의 스낵이나 수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답했다.

최지영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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