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월 만에 잡힌 '청송 탈주범' 이낙성 "중국집 주방일 하며 숨어 지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청송감호소 탈주 1년7개월 만인 31일 오후 검거된 이낙성(42)씨가 서울 성동경찰서로 호송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4월 7일 치질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탈주했다. [연합뉴스]

"이낙성씨."(경찰)

"네."(이낙성)

신창원(39.2년6개월)씨에 이은 두 번째 장기 탈주범으로 경찰의 속을 썩였던 이낙성(42)씨가 31일 검거된 순간이다.

이씨는 당시 힘없이 어깨가 처진 상태에서 경찰의 지시를 순순히 따랐다. 격투극이나 추격전은 없었다. 지난해 4월 7일 청송감호소 수감 도중 치질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다 탈주하면서 시작된 이씨의 도피행각은 1년6개월24일 만에 끝났다.

◆"내가 바로 이낙성"=이씨의 체포는 이날 오전 4시 숙소인 여관으로 돌아가다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부상한 게 실마리가 됐다. 앞니 2개가 부러지고 턱이 찢어진 이씨는 오후 2시40분쯤 서울 성수동2가 영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수속 과정에서 병원 측이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하자 이씨는 처음에 '장상철'이라는 가명을 댔다. 이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자 "머리를 다쳐 기억이 안 난다"고 횡설수설했다. 그러다 "내 이름은 이낙성이다. 경찰에 얘기하면 알 거다"라고 털어놨다.

이를 듣고 병원 측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인근에서 순찰 중인 경찰이 응급치료를 마치고 걸어가는 이씨를 붙잡을 수 있었다. 체포된 이씨는 턱 부상으로 인해 말을 제대로 못했다. 이씨를 붙잡은 서울 성동경찰서는 이날 저녁 수배 관서인 경북 안동경찰서로 신병을 인계했다.

◆"쫓기는 생활이 힘들어"=이씨는 탈주 당시보다 여윈 모습이었다. 이씨는 경찰에서 "몸이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도피생활이 너무 힘들어 자수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가 오랜 도주생활로 폭음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이날도 소주 6병가량을 마신 뒤 숙소인 여관인 줄 알고 엉뚱한 인근 건물 2층에 들어가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경기도 구리와 서울 마포 등지의 중국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생계를 해결한 것으로 조사됐다. 돈이 떨어지면 서울 북창동 인력시장에서 매일 일당을 받는 일자리를 구했다. 숙소는 중국집 주방에서 해결하거나 시청 근처와 신촌의 여인숙을 구했고, 돈이 떨어지면 노숙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 6~7월 이씨를 주방보조로 고용했던 서울 성수동 D중국집의 전모(49)씨는 "모난 곳 없는 성품으로 보여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도피기간 중 추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넉 달만 참았으면=이씨는 1986년 절도혐의로 처음 체포됐고, 88년 강도상해 혐의가 인정돼 12년형을 살았다. 2001년 출소 뒤 강도혐의로 다시 징역 3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다. 2004년 1월부터 청송감호소에서 보호감호를 받았고, 지난해 4월 7일 탈주를 감행했다. 당시 치질 수술을 받기 위해 경북 안동의 한 병원에 입원하던 가운데 교도관이 자고 있는 틈을 타 도망을 친 것이다.

경찰은 검거 전담반을 만들고 현상금 1000만원까지 내걸었지만 이씨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워낙 행방이 묘연해 경찰 일각에선 사망설.해외밀항설 등이 나올 정도였다.

권호.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