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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타짜' 속편 만든다는 소문 도는데 …

중앙일보

입력

영화 '타짜'(사진)의 관객 수가 600만을 훌쩍 넘었답니다. 최동훈 감독의 날렵한 연출력에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이 딱 맞아떨어진 결과인데요, 이런 걸 도박 용어로 '뒤패가 짝짝 붙는다'고 하던가요? 아무튼 한국형 도박영화가 극장가에서 관객을 싹쓸이하는 이때, 새삼 조상의 유구한 노름문화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호기심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인이 화투를 처음 손에 쥔 때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세기 '하나후다'라 불리는 일본산 화투가 들어와 1893년 갑오개혁 이후 한국 도박계를 완전 평정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사회 기강을 확립한답시고 투전.골패 같은 전통 도박을 엄히 다스리자 화투가 얼른 그 빈자리를 파고든 거지요. 당연하게도 친일파들이 이 일제 신문물에 제일 먼저 빠져듭니다.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지용 같은 이는 거액이 걸린 내기 도박을 일삼다가 물려받은 전답 다 팔아먹고 급기야 상습 도박죄로 법정에 서는, 말그대로 패가망신을 당했다지 뭡니까. 당시 그 양반이 빠져든 화투 놀이가 바로 '짚고땅'이었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요즘 흔히 '짓고땡'이라 부르는 노름과 거의 같은 건데요, '타짜'에서 도박꾼들이 늘상 하는 '섰다'가 바로 이 '짓고땡'에서 파생한 게임입니다. 그런데 원래 일본 화투놀이에는 짓고땡이니 섰다니 하는 게임 방식이 없었다네요. 그럼 대관절 그토록 체계적인(?) 족보는 어디서 유래한 걸까요?

한국의 도박문화를 집대성한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살림)에 힌트가 있습니다. 화투 이전 조선 노름판을 평정한 '투전'이 바로 '짓고땡'과 '섰다'의 원천이라는 겁니다. 적게는 40장에서 많게는 80장에 달하는 패를 나눠 쥐고 이른바 '끗수'를 맞춰 승부를 가리는 투전 족보에는 '땡' '가보' '따라지'같은 익숙한 용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결국 노름의 하드웨어만 화투로 바뀌었을 뿐 소프트웨어는 이미 투전으로 완성된 규칙을 그대로 가져다 쓴 셈입니다.

한국형 사행성 도박의 모태라는 그 옛날 투전판에도 어김없이 타짜는 있었습니다. 그중 18세기 조선 최고 타짜 원인손의 일화가 제일 유명합니다. 명색이 예조판서의 자제분께서 밤낮 노름에 빠져 사는 꼴을 보다 못해 하루는 아버지 원경하가 원인손을 불러 실력을 테스트합니다. 80장 투전패 중 '인장'이라 불리는 패 한 장을 미리 숨겨놓고 그걸 뽑지 못하면 심하게 매질하겠다고 호통을 쳤다는군요. 그랬더니 이 아들녀석 대뜸 하는 얘기가 "아버지, 이 중에는 인장이 없는데요?" 이쯤되면 전국구 타짜 평경장도 울고갈 솜씨가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뒤늦게 정신차려 훗날 우의정까지 오른 원인손은 어쩌면 고니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짜' 속편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18세기 전설의 타짜 원인손의 일대기를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음란서생' 못지않은 나름 이색적인 퓨전 사극이 되지 않겠습니까?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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