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위장 된 임진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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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임진각이 통일을 외치는 각종 집회와 시위의 메카로 변모하고 있다.
철조망 너머로 자유의 다리와 북녘 산하가 어른거리고 1년 내내 이산의 아픔과 향수를 삭이려는 실향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일로의 북쪽 맨 끝.
결국 무산되고만 7·20 민족 대 교류선언과 범민족대회추진을 계기로 본격 통일열기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13일 「38선 철폐 추진 본부 중앙회」소속이라고 자신들을 밝힌 실향민 20여명이 절단기로 자유의 다리 남쪽 민통선 출입문의 철망을 뜯고 다리 앞까지 돌진했던 초유의 진풍경.
l6일에는 임진각이 세워진 이래 최대인파인 6천여 천주교 신자·수녀·신부들이 8백 평 광장을 꽉 메운 채 통일염원미사를 가졌다.
7·20이후 이곳을 찾아 집회나 시위를 벌인 대학생, 재야·반공·실향민 단체,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 수는 줄잡아 1만 명선.
지난달 26, 27일에 이어 민족 대 교류기간 중 범민족대회추진본부 대표들이 판문점 실무회의를 위해 매일 찾아왔다가 경찰과 승강이를 벌였고 11, 13, 14일 방북 미사실무접촉을 하러 온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대표들도 발이 묶인 철조망 앞에서 항의 침묵시위를 했다.
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범민족대회성사를 촉구하는 격렬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는 등 대학가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들이 연출되고 13일 백발이 성성한 실향민 7백여 명은 이곳에 마련된 「망향우체통」개통식을 갖고 가져온 4천여 통의 편지를 넣으며 목이 메기도 했다.
철조망 곳곳과 주변 나무기둥에 「남북자유왕래 실현하자」 「수락하라 민족교류」 등 자유 총 연맹 등에서 내건 대형 플래카드의 홍수.
가장 당혹스러운 곳은 경찰과 군 당국.
관할 파주경찰서에서 직원 1명이 파견근무를 해 오던 경찰은 최근의 잇단 시위로 진압병력이 연일 배치돼 상주하다 시피하고 있으며 16일 통일염원 미사 때는 무려 15개 중대 2천2백여 명을 임진각 주변에 배치하는 등 긴장.
한편 이와 함께 임진각 남쪽 통일공원의 각종 조형물과 반공전시관이 6·25를 상기시키고 북한의 만행만을 폭로하는 것으로만 돼있어 화해와 화합의 상징물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다.
전적비와 한국파병을 결정한 미 트루먼 대통령 동상, 탱크·폭격기 등 6·25당시 군 장비, 또 전시관 안에 있는 무장간첩들의 이승복군 살해 장면 모형과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사진 등 대부분 적대감과 적개심만을 부추기는 내용들.
지난달 말 국교에 다니는 두 자녀·조카들과 함께 이곳을 다녀왔다는 교사 김홍근씨(40)는 『저들의 만행과 역사의 산물을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의 통일·평화무드에 어울리는 남북 화합 상징물이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통일운동의 명소로 떠오른 임진각은 그에 걸맞게 변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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