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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 시인 정지운씨|"낮추어 사는 삶이 훨씬 즐거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빈손 들어 방을 닦는다 먹물 풀어내리 듯< 흐르는 세월의 강을 밤이 앓아 핀다 밤의 한가운데에 나의 연분홍, 보라, 흰꽃이 떨어져 무형의 각인을 새긴다.>(『꿈』 전문)

<중학 졸업 뒤 가출>
서울 변두리 신시가지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한쪽 자투리 땅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정지운씨 (40)는 산다.
도농 접경 지역, 그 도시와 농촌 어느 곳에도 편입되지 못한 삶의 변방에서 그는 낮엔 철길 밑 무허가 구두닦이 박스에서 구두를 닦고 방엔 비닐하우스에서 시를 쓴다. 구두닦이의 검은 슬픔과, 그래도 스러지지 않은 연분홍빛 아름다움을 향한 서정 혹은 추억으로 방들을 닦아내며 하얗게 동이 틀 때까지 시를 짓는다.
『불볕 더위지만 제겐 그래도 요즘이 나아요. 장마철에 누가 구두를 닦겠습니까. 장마 지면 구두통을 메고 주택가를 떠들 수밖에 없지요. 떠돌다 피아노소리 들리는 처마 밑에 구두통을 깔고 앉아 시를 쓰곤 했지요』.
정씨는 이렇게 지은 시 65편을 묶어 시집 「검은 손의 서정』 (하락도서간)을 최근 펴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고향인 충남 당진을 뛰쳐나와 객지 생활에 나섰다. 중학 시절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시에 빠져든 그에게 엿도가와 고물상을 하던 집에서 시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그는 추운날엔 다방 주방에서 코피를 끓이고 날이 풀리면 구두통을 메고 거리를 돌았다.

<"배운게 이것뿐">
『구두를 닦다보면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한 켤레 닦는 잠시지만 그들로부터 사회적 화제 내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되지요. 그 이야기들을 종합, 제 어설픈 시심으로 걸러낸 것이 제시입니다. 배운 것이 이것 밖에 없으니 구두를 닦아야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고, 어찌 생각하면 구두 닦는 노동이 없으면 시가 안나오니 시를 쓰기 위해 구두를 닦고 있는 것도 같고….』
그는 그렇게 번 돈으로 비닐하우스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고양 지방 문학의 씨뿌리기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더는 어리석음에 지치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낮추어 가는 영혼의 오만한 높이>(『여정』중)
그의 시 또한 낮추어만 사는 지혜를 터득한 오만한 자존심으로 번뜩이는 구절들도 차있다. 떠돌면서 가슴이 맺힌 것이 있어야 시가 나온다는 정씨지만 그의 시에서 민중시 냄새는 나지 않는다.
『민중시도 제법 읽었지요. 그런 시를 쓰려면 역사·사회에 대해 알아야하는데 배우지도 못했고, 또 목소리를 질러야되는 그런 시에 물들면 서정 위주로 생활 현장을 담은 제 시가 망가질 것도 같고 해서 일부러 피하고 있지요.』
겪고 보고 듣는 것만을 자신의 시적 프리즘으로 분사, 독자들에게 서정적으로 보여준다는 그는 자신의 시를 「서정적 현장 시」 또는 「생활시」라 불렀다.

<석달산 여자 떠나>
「작년 봄 행주산성에서 고양 문학회 회원들의 시화전을 개최했어요. 그때 고양 문화원이나 유지 등이 후원하기로 돼 있어 행사를 벌였는데도 지원이 없어 체 가정만 파탄되고 말았지요.』
나이 40을 바라보던 작년 50만원 보증금으로 방 한칸 얻어 여자와 함께 난생 처음 살림을 차려 한 석달 행복했지만 시화전 개최 비용으로 보증금을 날리고 가정까지 파탄됐다는 정씨. 비닐하우스에서 같이 살자니 한심하다는 듯 떠나가 버린 그 여자가 밉다기보다 지방 유지들이 야속하다는 표정이다.
기백만, 기천만원씩 들여 중앙에 있는 예술 단체를 불러 행사를 벌이면서도 정작 지방 문화 단체들의 행사 때는 몇푼 내는 것을 꺼리니 어떻게 지방 문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꿈은 노인·실직자·어린이 등 3세대를 위한 문화 회관을 설립하는 것. 이를 위해 앞으로 출간될 제2시집 인세와 구두 닦아 번 수입을 쓸어 넣을 생각으로 지방 유지들의 도움을 청하고 있으나 그들의 반응이 탐탁지 않다. 타지에서 흘러온 한낱 구두닦이 주제에 지역 발전 운운 외치고 다니니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이란다.

<문화 홀대에 서운>
『장가도 가야되겠고 문화 회관도 지어야겠는데 우선은 구두를 닦아야 되겠지요. 이 구두 닦는 일로 하여 시가 나오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요.』
일단의 철거반원들이 그의 무허가 구두닦이 박스를 철거하러 왔다. 다음날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하겠다는 그들의 최후 통첩을 받고도 태연하다. 내년 이곳에 에어컨 달아 손님들을 시원하게 모시겠다고 농까지 건넨다. 철거당하면 다시 짓고, 또다시 짓곤 하는게 민초들의 삶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구두 닦는 슬리퍼를 들고/무엇이 그리 좋은지/한 손을 허공에 빙빙 돌리며/껑충껑충 뛰며 절름거리며/반쪽 세월, 무엇이 그리, 좋은지/산다는 것이.』 (『산다는 것은』중)
구두닦이 시인 정지운씨는 그렇게 산다. 무엇이 그의 삶을 그렇게도 좋게 만드는지 자신의 삶에 대한 예찬이 정녕 부럽다. 글 이경철 기자·사진 장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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