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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만 개방 속으로 과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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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EC (유럽공동체) 등 강대국들이 우루과이라운드(다자간 무역협상)를 연내에 종료시키기 위해 공식·비공식 접촉을 진행 중이다. 이 협상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에도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는 현재 15개 분야로 나누어 협상이 막바지 고비에 이르렀으나 농산물이 협상타결의 최대 장애로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그동안 농산물에 대한 협상과정과 각국의 수출지원 현황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세계의 강대국들은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농산물 그룹 협상회의·주요5개국 농무장관회의 등을 잇따라 열어 막후절충을 꾀하고있으나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닥쳐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농산물 협상이 실패할 경우 우루과이 라운드를 연내에 종료시킬 수 없다는 인식이 세계 각국간에 팽배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은 제각각의 주장을 좀처럼 굽히지 않고 있다.
농산물 교역은 88년 기준, 3천9백억달러로 전체 세계 교역량 2조8천8백만달러의 13·5%에 불과하다.
그러나 농산물은 식량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안보적 차원에서 농업 생산에 정책적으로 적극 매달려 왔으며 심지어 이를 무기화 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70년대 오일 쇼크 때 중동 산유국이 석유를 무기화하자 식량 무기론이 등장했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는 농산물 수출금지를 통해 보복에 나섰다.
농산물의 무기화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농산물 생산과 수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거의 전쟁에 가까울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중 해상 운송로가 막히면서 식량안보의식은 깊숙히 뿌리를 내려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한 증산경쟁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중국·인도 등 거대한 인구를 지닌 개발도상국가들은 자급자족 체제를 갖추었고 농산물 수입국이던 EC는 수출국으로 전환했다.
반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은 농산물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했고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개발도상국가가 크게 늘어나면서 세계농산물 교역은 연평균 4∼5%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72년 세계적 대 흉작으로 농산물 수요가 공급을 초과, 국제 곡물시장에서 가격파동이 일어나고 기상이변으로 앞으로도 흉작이 몇번 겹치리란 관측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거론되면서 식량위기의식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80년대 초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이 닥치고 개발 도상국의 외채부담 가중으로 농산물교역 증가율이 감소되면서 더욱 짙게 깔려나갔다.
게다가 농산물 수출국간에는 쌓여 가는 농산물 과잉 재고처리를 위해 재정 압박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수출을 늘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농민들에게 농산물을 많이 생산하도록 장려금을 주고 또 수출을 늘리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양상은 한마디로 전쟁과 같았다.
이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는 농산물 생산과 수출에 관련된 모든 보조금을 없애고 농산물 교역 자유화를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헐어 버리기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지만 이같은 전쟁상태를 진정시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미국>
미국은 밖으로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타결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안으로는 농산물 생산과 수출을 적극 지원하는 새로운 법 제정을 서두르는 등 화전 양면작전을 고수하고 있다.
농업은 첨단산업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다. 세계 농산물 교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1%로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89회계 연도의 경우 농산물 수출이 3백97억 달러로 무역 흑자만도 1백8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이 농업에 쏟는 공공지원금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80년 2백40억달러에서 86년에는 5백40억 달러로 두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낙농업에 대한 지원이 엄청나 86년 소 한 마리에 지급한 보조금이 1천4백달러에 달했다.
이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저개발 64개국의1인당 GNP보다 많은 금액이다.
미국의 농업 지원은 농업법과 식량안보법 등을 근거로 농산물 가격안정, 농가 소득보장 및 수출지원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예컨대 올해 생산될 농작물을 담보로 금융지원을 해주고 수확 후 시장에 내다 판 금액이 금융지원 액수보다 많으면 빌려준 돈을 갚도록 하고 반대로 적을 경우에는 돈의 일부를 탕감해 주고 있다.
또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일정기간 농지를 놀리는 농민에게 보상금을 주고 외국에서 미국 농산물을 사들이면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다.
미국은 현재 농업법 개정을 추진 중인데 농업 지원의 축소보다는 이제까지. 지원이 상대적으로 덜된 농산물 품목에까지 지원을 확대하는 목으로 정책방향이 모아지고 있다.


이른바 CAP로 불리는 공동 농업정책은 농산물을 수입하던 이 지역 국가들을 수출국가로 전환시켰다.
이 제도의 주요골자는 수입에는 높은 과징금을 부과, 역내의 농산물 가격을 세계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준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또 수출에는 보조금을 지급, 농민들은 높은 가격에 농산물을 말수 있어 도시 근로자보다 많은 소득을 올리고 동시에 증산에 주력, 식량 자급을 달성했다.
공동 농업 정책에 EC회원국들이 지출한 돈은 84∼86년 사이 연평균 2백50억달러로 79∼81년 연평균 지원액에 비해 50%나 증가, 재정 압박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가격안정을 외해 농민들로부터 사들인 치즈와 버터가 산더미같이 쌓여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EC는 농업지원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해 55세 이상의 농민이 농사를 그만 지을 경우매년 수당을 지급하고 보유농지 20%이상의 땅을 농사를 짓지 않고 놀릴 때는 휴경화 보조금을 주는 등 보완대책을 마련중이다.
그러나 농업에 대한 지원을 전면적으로 없애자는 미국의 주장에는 극력 반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최대 난관이 되고 있다.

<일본>
스위스에 이어 선진국 중 두번째로 농업보호정책에 철저하다.
61년에 제정된 농업기본법을 근거로 86년 한해만 해도정부 예산의 19%인 4천8백억엔을 농업지원에 투입했다.
철저한 수입규제로 세계농산물의 총 수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년대 이후 줄곧9·2%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식품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있으나 쌀·쇠고기·돼지고기·채소·낙농품은 전략적으로 집중지원, 자급체제를 갖추었다.
특히 쌀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은 2중 곡가제를 실시, 생산량의 60%를 수매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압력으로 88년 농산물의 대대적인 수입개방 조치를 취했으나 많은 품목을 사실상 쿼타제로 묶고 건강 관련법·검역규제·표준제도 등으로 농산물 가공품의 수입을 막아 농산물 수출국의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도 쌀 등 일부 품목은 식량안보의 차원에서 수입 개방을 할수 없다고 강력히 버티고 있다. <한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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