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미국과도, 유엔과도 등지려 작정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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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금강산 관광,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확대 참여 등 갈등 요인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라이스 장관은 한국이 PSI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길 요구했다. 그러나 반기문 장관은 "전면적 참여는 남북 간 군사 대치 등의 문제로 시간이 걸린다"고 말해 사실상 거부했다. 금강산 관광은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다고 한다. 대북 제재를 둘러싼 양국 간 시각차를 볼 때 앞으로 갈등이 깊어질 게 확실시돼 정말 우려된다.

미국은 '금강산 관광은 북한 권부에 돈을 주기 위해 고안된 사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미국과의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기존 방침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당정은 어제 두 사업은 유엔 결의안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재확인해 이들 사업을 지속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심지어 열린우리당의 김원웅 의원은 "미국이 금강산 관광을 문제 삼는 것은 방자한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접점을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 정권은 북한의 핵실험 전, 북한이 이를 강행하면 강력 대처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렇다면 금강산 관광도 이전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넘어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당정 고위관계자들의 인식을 보면 보조금 중지 등 운영 방식을 약간 바꾸면서 그냥 가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유엔제재위원회 결정도 나오기 전에 강행 방침을 잇따라 천명하는 것이 이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만의 하나 이 위원회에서 추진 불가라는 판단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강행할 것인가.

여권의 이런 인식은 안보리 결의안 자체에 대해 보이고 있는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감안하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국제사회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며 "제대로 된 나라는 자기 문제를 절대로 국제화.다자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논란을 빚자 그는 "유엔 결의 해석을 이해하는 데 자기 중심을 잘 잡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발언은 한국이 유엔 결의안 이행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시그널을 국제사회에 줄 소지가 크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기구다.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핵심체인 것이다. 또 안보 위기를 타개하고, 북핵 해결을 위해선 미국의 지원이 더욱 요청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자원은 없이 국제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미국과도 등지고, 국제사회에서도 소외된다면 우리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북한과 대화의 문은 열어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안보리 결의를 제대로 이행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할 때라는 점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여기서 한국이 잘못된 메시지를 미국이나 국제사회에 던지게 되면 북한과 한통속이라는 낙인만 찍힌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렇게 되면 우리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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