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 3각 축이 뭉친다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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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지금 북한은 에너지의 90%를 중국의 원조에 기대고 있지만 절대량이 부족한 형편이다. 에너지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북한은 베네수엘라 석유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즈음 북한과 베네수엘라는 평양과 카라카스에 대사관을 열고 석유협정을 맺을 채비다. 이런 문제로 북한 고위관료들이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잇달아 얼굴을 내보였다. 2005년 9월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이, 2005년 11월 임경만 무역상을 우두머리로 한 북한 경제사절단이 베네수엘라로 갔다. 카라카스에서 북한 경제사절단이 지난날 이란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사일을 수출품목에 올렸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물론 북한 미사일 기술에 관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북한제 스커드 C형 미사일(사정거리 700km)은 베네수엘라에서 미국 본토에 못 미치지만, 노동 미사일(사정거리 1,500km)은 미 플로리다 남부를 사정권에 둘 수 있다. 석유와 미사일의 맞교환은 이란과 더불어 반미 전선의 삼각 축인 북한.베네수엘라 두 나라 지도자 모두에게 입맛을 당기도록 만드는 거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 미사일과 석유 맞교환 거래협정이 맺어졌다면 미사일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쪽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옥죄기가 도를 더해가는 마당이어서 현실적으로 미사일 부품을 배로 실어 보내기는 어렵다. 석유로 미국 포위 압박한다 석유를 연결고리로 한 반미의 축이 이란.베네수엘라다. 이라크의 반미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이라크 법정에 서는 고단한 처지가 된 지금, 미국의 석유정책을 흩트리고 미국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이 큰 인물 둘을 꼽으라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메디네자드 대통령이다. 지난 9월 유엔총회장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마흐무드 아흐메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패권주의가 세계평화를 위협한다"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했다. 특히 차베스는 여덟 번이나 거듭 부시를 '악마(El Diablo)'라고 외교적 막말을 쏟아냈다. 원래 차베스의 연설문 초안은 '악마'가 아니라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하루 앞서 있었던 부시 대통령의 유엔 연설문을 읽으면서 차베스는 '부시가 마치 전 세계의 주인인 듯 거들먹거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악마'라고 용어를 바꾸었다고 알려졌다. 차베스는 1998년 정권을 잡았다 2002년 미국이 지원하는 쿠데타로 한때나마 권좌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에바 모랄레스의 볼리비아 등 중남미 반미 국가들과 협력관계에 있다. 아울러 이란.중국.말레이시아.러시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미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그는 남미대륙이 지난날처럼 미국의 텃밭이 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지녔다. 그는 미국을 제치고 남미와 멕시코를 포함한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06년 들어 그 성과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으로 나타나고 있다. 차베스의 반미 감정이 어떠하든, 그가 유엔총회장에서 읽어 보라고 소개한 노엄 촘스키의 책 <패권이냐, 생존이냐: 세계 지배를 추구하는 미국>은 1991년 옛소련 몰락으로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뒤 유일 패권국가로 떠오른 미국의 대외정책이 지구촌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그득하다. 이란.북한과 더불어 베네수엘라는 미국을 '패권주의 깡패국가'라고 비난하는 반미 전선의 3각 축이다. 차베스가 패권국가 미국을 향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다름 아닌 석유다. 차베스의 힘의 원천은 석유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에서 세계 6위, 생산량에서 3위를 차지하는 석유부국이다. 차베스는 풍부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미국에 석유 수출을 중단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반미 목소리를 높여왔다. 미국은 하루 1,950만 배럴의 원유 소비량 가운데 1,150만 배럴을 수입에 기대고 있다. 그 가운데 베네수엘라로부터 12% 쯤을 들여온다. 베네수엘라의 최대 석유 수출국이 바로 미국이다. 적대적 관계에 있는 미국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줄이거나 아예 차단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한다는 전략을 궁리 중인 차베스가 미국 말고 대안으로 삼는 나라는 다름 아닌 아시아, 특히 중국이다. "미국으로 가는 원유 공급 라인을 아시아 쪽으로 돌려 태평양 뱃길을 새롭게 개척하겠다"는 전략이다. 그 중심축에는 하루 74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는 세계 2위의 석유 소비국 중국이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8월 중국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차베스가 대통령에 오른 이래 중국에 여러 차례 들른 것도 그런 목적에서였다. 베네수엘라는 앞으로 중국에 대한 최대 원유 공급국가로 떠오를 전망이다. 두 나라는 2006년 현재 하루 15만 배럴 수준인 원유 교역량을 2009년까지 50만 배럴로 늘리고, 2012년 뒤부터는 하루 140만 배럴까지 끌어올릴 참이다. 그렇게 되면 베네수엘라가 생산하는 석유의 45%를 중국이 가져가게 된다. 중국과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중심으로 가까운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가리켜 차베스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표현을 썼다. 중국과 베네수엘라는 파나마 운하를 크게 늘려 30만t급 유조선이 너끈히 드나들 수 있도록 파나마 운하를 확 뜯어고칠 움직임이다. 제3차 석유위기 오는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기에 앞서 1배럴에 20달러 하던 국제유가는 그동안 3배나 뛰었다. 반미 노선을 걷는 두 나라, 베네수엘라(석유 매장량 세계 6위,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5% 보유)와 이란(석유 매장량 세계 2위, 전 세계 매장량의 11.2% 보유)은 서로 손잡고 세계 제2의 소비대국인 중국 카드를 활용해 미국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지구상의 하루 석유 소비량의 4분의 1을 쓰는 '석유 과소비국이자 중독국'인 미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구도다. 베네수엘라가 서유의 미국 수출을 중단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도 미국이지만, 우리 한국을 비롯한 석유 수입국 전체가 영향받게 된다. 미국 의회의 한 보고서는 세계 유가가 15%쯤 오를 것이며, 단기적으로 세계 경제성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일 경우 베네수엘라가 대미 석유 수출을 중단해 경제적 압박을 가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미국 행정부에서는 이란의 핵 개발 움직임에서 비롯된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져 미국.이란전쟁이 벌어질 경우 베네수엘라가 어떤 형태로 개입할 것인가를 고려한 시뮬레이션(모의 전쟁게임)까지 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현재 하루 약 4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그 가운데 250만 배럴을 수출한다. 수출 원유의 절반은 유럽 지역으로, 나머지 절반은 아시아 지역(일본.중국.한국 등)으로 향한다. 한국은 전체 수입 석유의 8%를 이란에 기대고 있다. 중동의 주요 석유 수송로 가운데 하나인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석유 수출은 전 세계 석유 수출 물량의 35%에 이른다. 호르무즈해협이 미국.이란전쟁으로 봉쇄된다면, 그리고 이슬람 산유국들과 남미의 반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이란 편에 서서 석유를 무기화한다면 국제 석유시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석유와 관련된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제정세의 악화로 비롯된 석유전쟁이다. 이는 곧 제3차 석유파동이다. 만약 이란이 석유를 무기화해 수출을 중단한다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군사적 충돌을 벌여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이란산 석유뿐 아니라 페르시아만 지역의 석유 수출이 중단된다면, 베네수엘라마저 석유를 무기화해 미국을 압박한다면 석유시장은 물론 지구촌 경제가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하루 석유 소비량 228만 배럴로 석유 소비 세계 7위인 우리 한국에도 악몽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 뻔하다.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기사 이어보기>북한·이란·베네수엘라 反美 3각 축이 뭉친다①북한·이란·베네수엘라 反美 3각 축이 뭉친다②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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