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 3각 축이 뭉친다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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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다. 김정일의 배짱을 두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배경을 북한.이란.베네수엘라 반미 3각 축으로 보기도 한다. 핵과 석유를 무기로 한 이들 세 나라의 대미 전략을 해부한다. 1. 북한.이란은 핵 카드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이란.베네수엘라는 언제라도 석유를 무기화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할 태세다. 반미 3각 축과 미국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위기는 핵전쟁으로 다가올까? 2. 에너지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북한은 베네수엘라 석유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즈음 북한.베네수엘라는 평양과 카라카스에 대사관을 열고 석유협정을 맺을 채비다. 3. 이란이 석유를 무기화해 수출을 중단한다면, 베네수엘라마저 석유를 무기화해 미국을 압박한다면, 석유시장은 물론 지구촌 경제가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한국에도 악몽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 뻔하다. 훗날 역사가들이 2006년 미국의 대외관계를 기록한다면 어떤 특징적 내용들로 채울까? 한 가지 특징은 미국인들에게 핵 공포를 안겨준 해로 기록될 것이다. 다름 아닌 북한과 이란으로부터의 핵 공포다. 2006년 4월 이란은 "우라늄 농축에 성공했다"고 밝혔고, 2006년10월 북한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북한과 이란 두 나라가 던지는 핵 위협의 수준은 아주 다른 것이다. 핵무기 1만 기를 지닌 미국에 견줄 사안이 못 된다. 문제는 핵폭탄 1개가 지닌 엄청난 파괴력이다. 미국인들이 걱정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북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 미국 안보 전문가들은 그래도 차분한 편이다. 미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간판급 연구원인 앤서니 코즈먼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지금까지 얻은 실증적 자료만으로 볼 때 북한은 알래스카에 돌덩어리 하나를 던질 수 있는 미사일의 초기 시험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알래스카 혹은 하와이나 미 본토 서북쪽 지역에 작은 핵무기를, 그것도 부정확하게 발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란의 경우는 그 위협 수준이 더욱 낮다. 기술 수준도 낮고 지전략적(geostrategic) 측면에서도 미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란과 적대국가이자 미국의 대외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동맹국인 이스라엘에 위협이 될지는 몰라도…. CSIS의 코즈먼이 내린 결론대로 북한이 미국을 향해 그런 낮은 수준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운 어리석은 짓"이다. 북한 정권이 그런 무모한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북핵이 미국에는 공격용이 아니라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임이 드러난다. 21세기 초강국 미국에 맞서는 북한과 이란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지금보다 훨씬 키운다고 해도 언젠가 미국의 한 도시에서 핵폭탄의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가능성은 매우 낮다. 9.11테러를 겪은 탓일까? 많은 미국인에게는 두 나라의 핵 관련 뉴스가 핵 테러의 두려움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해가 바로 2006년일 것이다. 문제는 미국인들의 정서적 불안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의 긴장이다. 레드라인 넘어선 북한의 고립 북한 핵실험은 한국이나 미국에 일종의 금지선(red-line)으로 여겨져 왔다. 10월9일 북한은 그 금지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는 물론 국제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2005년 2월10일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했을 때보다 더 큰 파장이다. 지금부터 20개월 전에 북한이 자랑스레 "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북핵선언을 내놓았을 때 한국과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미 부시 행정부는 '무시 전략'으로 나갔다. 북핵 보유가 한반도 세력균형과 평화를 흩뜨릴 하나의 큰 변수로 작용하리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한의 그런 선언이 '하나의 공갈이고 협박'(피터 고스 미 중앙정보국장의 발언)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의 2.10 핵보유선언에 견주어 올해 10.9 핵실험 발표에 따른 미국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북한의 금융과 무역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북한을 철저히 고립시킨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은 관련 이해당사국들의 태도를 더욱 강경하게 몰아갈 것이 뻔하다. 미국뿐 아니다. 한국과 중국.일본.러시아 등 6자회담 참여국은 모두 북핵 실험에 비판적 입장에서 대북 제재에 한목소리다. 대북 군사조치 조항만 빠져 있을 뿐 사실상 북한을 고립시키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 들린 지 1주일도 안 돼 통과됐다. 어찌 보면 북한은 "핵무기를 끌어안고 굶어 죽도록 만들자"며 핵실험 이전부터 금융제재를 비롯한 북한 옥죄기를 강력히 주장해온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설정한 구도에 다가가는 모습이다. 1년8개월 전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밝혔을 때 미 부시 행정부는 핵 보유가 아니라 핵실험을 대북정책에서 일종의 레드라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금융제재 등 북한 옥죄기에 나섰다. 이로 인해 미 부시 행정부와 한국 노무현 정부 사이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번 10.9 핵실험은 미국의 그러한 대북정책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7월5일)에 나섰으나 이렇다할 성과가 없자 끝내 핵실험이라는 카드를 뽑아든 모습이다. 핵실험을 통해 대미 협상력을 강화함으로써 금융제재를 비롯한 미국의 북한 옥죄기를 풀고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얻어낼 것은 얻어내자"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미 부시 행정부는 강경자세다. 미국은 이미 북한의 핵실험이 이뤄질 경우 어떻게 대응한다는 시나리오를 짜두었다. 그 시나리오의 제1장이 바로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다. 제2장에 선제공격을 비롯한 군사적 대응 방식이 있지만, 이는 북한이 세계 아홉 번째로 핵무기 보유국에 오른 상황과 남북한의 지전략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작은 시나리오다.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의 길이 더욱 험난해졌다는 점이다. 예전에 벌어졌던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핵무기 제조와 보유를 막자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북한이 지닌 핵무기를 제거하고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쪽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따라서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이 다시 열린다면 외교적 타결의 벽은 더욱 높아진 셈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으로서도 답답한 상황이 됐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논의를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 유엔 안보리에서의 제재 논의를 비롯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10.9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어떤 형태의 제재를 가할 것이며, 그런 제재가 고립정책을 펴온 북한에 얼마나 효과를 볼 것인가가 관심사항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과연 한반도의 평화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겠느냐"는 점도 논란거리다. 더 험난해진 한반도 비핵화 길 둘째, 북한의 핵실험이 한국 노무현 정부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인가, 실패였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논란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잘못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장관을 지냈고, 평양에도 다녀간 윌리엄 페리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지난 6년 동안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완전 실패(total failure)'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력한 경고만 남발하면서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셋째는 북한의 핵실험이 동북아와 국제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다. 페리를 비롯한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핵실험에 자극받아 동북아에 새삼 군비경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부회장 조지 퍼코비치도 페리와 같은 입장이다. 퍼코비치는 북한 핵실험의 '연쇄반응'으로서 ▷동북아 지역에서 벌어질 군비경쟁 ▷일본의 핵무장 추진 유혹 ▷이란의 핵 보유 야망 자극을 꼽았다.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기사 이어보기>북한·이란·베네수엘라 反美 3각 축이 뭉친다②북한·이란·베네수엘라 反美 3각 축이 뭉친다③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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