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시선이 두렵지 않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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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폭력ㆍ파행ㆍ공전의 임시국회
국회는 열리자마자 또다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그나마의 사회안정마저도 해치고 국민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는 근원이 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국회가 없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개탄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감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기는 하다.
지난달 16일에 있었던 노대통령과 김대중총재의 회담이 성과없이 끝났을 뿐 아니라 그 뒤의 여야접촉도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번 임시국회에 임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애당초 여야는 이번 임시국회를 각기 자신들의 세 겨루기 무대로 삼지 않았나 하는 인상마저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관계법의 상정을 둘러싼 문공위의 돌출적인 폭력사태로 국회는 정작 주요 쟁점법안들에 대해서는 그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채 일찌감치 파행의 길에 들어섰다.
폭력사태로 인한 여야의 경색 분위기와 9일 김대중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거듭 확인한 평민당의 지자제와 쟁점현안의 연계처리방침으로 볼 때 이제 겨우 1주일밖에 안남은 회기중 하나같이 중요한 쟁점현안들이 제대로 토의나 될지 의문이다.
여야가 절충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지 않는 한 앞으로의 사태진전은 뻔한 일이다.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여는 이를 무기로 예산과 쟁점법안 중 자신들의 정국구도에 유리한 법안들은 서둘러 일방처리해버리고 나머지는 다음번 국회로 넘겨버리기가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야는 그것을 이유로 기다렸다는 듯이 거리투쟁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로해서 정치인들이 당장 손해볼 것은 없을 것이다. 예상했던 수순의 진행일 뿐이기 때문이다. 손해를 보는 것은 국민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 하나가 시급하고 나라와 국민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현안들을 정치적 계산과 당리당략에 의해 표류시키거나 일방처리해 버린다면 결국 더 큰 정치적 부담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여야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보안법ㆍ국군조직법 등의 현안을 놓고 절충못할 이유를 적어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찾기 어렵다. 문제는 여야가 당리당략을 고집하며 양보를 하지 않는 데 있을 뿐이다.
그런 고집스런 자세가 그 시급성이나 중요성에 있어서는 오히려 순위가 처지는 방송관련법에서부터 창피스런 사태를 빚어낸 것이다.
문공위의 폭력사태로 인한 징계문제가 공전의 원인이 되어서도 안된다. 징계와 국회일정은 별개의 문제라고 우리는 본다.
국회는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들의 한심스럽고 치졸한 아귀다툼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 자신들의 본래의 직무인 의사처리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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