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숫자 속에 대박상품 숨어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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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국내 기업들이 통계를 활용해 잇따라 대박 신화를 일궈내고 있다. 유행이 급변하고 고객 입맛도 갈수록 까다로워지면서 상품화의 성공 여부가 정교한 소비자 통계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통계청은 최근 잘 팔리는 상품 20여개 가운데 7개가 국가통계를 활용해 개발됐다고 16일 밝혔다. 기업들은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인구주택총조사.해외관광여행객수.인구동태조사 등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통계를 읽고 소비자의 움직임을 사전에 예측해 상품 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최단기간 1억병 판매 돌파 기록을 세운 두산주류BG의 '처음처럼'은 여성 음주율과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사례. 브랜드 매니저인 최형욱 씨는 "제품 개발 과정부터 여성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펼치면서 출시 6개월 만에 전국 시장점유율 10%를 차지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밥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는 '햇반'의 인기 비결도 소비자 통계 속에 숨겨져 있었다. CJ㈜는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1985년 66만 가구에 불과했던 1인 가구수가 95년 164만 가구로 10년새 2.5배로 늘어난 것에 착안했다. 이에 따라 96년 2~3분만 데우면 먹을 수 있는 '햇반'을 출시해 밥상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오뚜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씻어 나온 맛있는 오뚜기 쌀'이라는 상품을 개발해 매출액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통식품인 고추장을 개별 포장해 내놓은 튜브형 고추장도 통계 덕분에 시장에 등장했다. 대상㈜ 청정원 마케팅팀은 전통식품의 현대화에 고심하다가 98~2001년 해외로 출국한 여행객 수가 매년 24%씩 급증했다는 통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토종 한국인은 해외여행에서 고추장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광고를 내보내자 튜브형 고추장은 요즘 해외 여행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저출산 통계는 위기의 젖병 산업에 활로를 열어준 경우다. 보령메디앙스 마케팅팀은 출산율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외동 자녀를 위한 프리미엄 상품인 '나노실버' 젖병을 개발했다. 그 결과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출액이 10배 가량 늘었다.

통계 속에 숨겨진 힌트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해태음료는 장래인구추계 통계를 활용해 65세 이상 고령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중장년층 남성과 실버세대를 겨냥한 한방음료 '궁비'를 출시했다. 또 SK커뮤니케이션즈의 경우 사이버쇼핑몰 통계를 토대로 여성 상품군에 집중하는 전략을 쓴 결과 전체 주문건수가 20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관계자는 "e-나라지표(index.go.kr)와 통계정보시스템(kosis.nso.go.kr) 등 5개의 통계서비스 시스템을 기업 투자 결정의 근거자료로 적극 활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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