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45년… 이질감 치유가 숙제(하나의 독일: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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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보이지 않는 “갈등” …후유증 길듯/인플레는 알뜰ㆍ검약 등으로 큰 문제없어/실업도 통합따른 고용증대로 해소 낙관
【베를린=유재식특파원】 당초 숱한 문제점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됐던 동서독의 경제ㆍ화폐ㆍ사회통합은 비록 초장이긴 하지만 의외로 순탄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점과 관공서가 「새문」을 열어 사실상 동독경제가 새로운 질서에 접목하기 시작한 2일과 3일 동독인들은 냉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흡사 통합첫날 흥분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니었다는 표정들이다.
동독인들이 서독마르크화를 갖게 됐을때 가장 우려됐던 것은 폭발적 소비와 이로 인한 인플레였다.
그러나 이들은 극도로 소비를 자제,이같은 우려가 제3국가들의 기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징표는 무엇보다도 불요불급한 돈의 인출 자제. 1차로 1인당 2천마르크까지 인출할 수 있었으나 동독국민의 80%가 인출을 끝낸 2일까지 동독전역의 1만5천여개소 환전창구를 통해 인출된 액수는 총 45억마르크. 1인당 평균 8백80마르크씩만을 인출한 것으로 서독 분데스방크는 추산하고 있다.
그돈으로 동독인들은 꼭 필요한 생필품이나 살 뿐 고가사치품은 가격만 물어보고 아예 구매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동베를린 특수」를 노려 물건을 잔뜩 비축해둔 서베를린의 상점과 백화점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우려되던 물가상승도 지금 상태로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과거 동독정부의 국가보조금으로 인해 극도로 저렴했던 일부 생필품의 값은 상대적으로 크게 올랐다. 빵이 1㎏에 45페니히에서 2마르크로,우유가 1ℓ에 69페니히에서 1마르크69페니히로 올랐으며,감자는 1마르크에서 3마르크99페니히로 무려 네배가 올랐다.
반면 값이 내린 품목도 많다. 바나나가 ㎏당 4마르크에서 3마르크로,코피는 파운드당 17.50마르크에서 6.99마르크로 값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귀물이었으나 이제는 진열장마다 지천으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가격이 특히 많이 내린 물품은 과거 공산정부가 「사치품」으로 간주,턱없이 비싸게 물건값을 매겨놓은 의류나 가전제품 등이다. 2백40마르크짜리 여성용 재킷이 14.95마르크로,4천마르크짜리 컬러TV는 5백29마르크로 값이 떨어졌다.
수요가 많은 생필품값이 올랐으나 내구재등의 가격은 대폭 내려 전체적으로 볼때 물가상승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고해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종업원(인구) 1천6백만명,매출(GNP) 2천70억달러의 「거대부실기업」(동독)을 인수하는 「사상최대의 기업인수합병」에 문제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량실업. 현재 동독기업중 서독기업에 대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 회사는 광학기기회사인 카를 차이스예나사,세계적 도기메이커인 마이센사 등을 포함,전체의 32%에 불과하다.
나머지 54%는 적자경영,14%는 도산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자그마치 2백만명의 실업자가 머지않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동독인들로서는 서독 마르크화의 「단맛」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시장경제체제의 「매운 맛」부터 봐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점 역시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게 동서독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동독에 숙련된 기술인력이 많은 점을 꼽고 있다. 간단한 재교육만으로 재취업이 가능하며 그만한 일자리는 서독기업과 정부의 투자로 머지않아 창출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독정부가 올해 2백20억마르크를 시작으로 91년 3백50억마르크,92년 2백80억마르크,93년 2백억마르크,94년 1백억마르크 등 모두 1천1백50억마르크를 동독에 지원키로 한점을 낙관론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돈은 주택ㆍ도로ㆍ발전시설건설 및 전기통신분야 등에 집중투자되는데 여기에 많은 실업자가 다시 취업할 수 있게 되리라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최근 다이믈러 벤츠사ㆍ지멘스사 등이 동독에 진출한 것처럼 러시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서독기업과 외국자본의 동독진출 또한 고용창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40여년의 분단에 따른 양독국민간의 정신적 격차,이에 따른 동독인의 심리적 위축감이 극복돼 완전 해소되기까지에는 짧지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여 앞으로 상당기간 후유증을 앓아야 할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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