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공익성 살리는 방향/규제 강화가 양날의 칼 안되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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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방송법 개정안 내용은 현재 공영일변도인 방송체제를 공ㆍ민영 혼합체제로 개편하고,이 변화에 따른 관련규정의 정비ㆍ보완으로 볼 수 있겠다.
정부가 다양한 국민의 전파수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혼합체제를 선택하면서도 상호경쟁에서 예상되는 우려를 막고 건전하고 공정한 내용으로 방송을 유도하려는 정책적 배려로 이해된다. 방송법 개정안가운데 방송위원회의 권한을 방송프로의 심의에 국한시키고 방송내용의 정정ㆍ해명은 물론 해당 프로그램의 중단을 명할 수 있도록 대폭 강화한 부분이 특히 두드러져 보인다.
정부가 의도하는 바 일단 채널 수가 늘어남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인해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취향에만 영합하는 저질화를 막으려는 규제장치의 마련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조항이 잘못 운영될 소지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막강한 심의와 규제기능이 특정권력이나 정부의 입김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때 프로그램의 내용은 공정성과 공공성이 훼손될 여지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광고정지나 방송사의 재허가 불허까지 요청할 수 있는 방송위의 권한은 양날을 가진 칼처럼 위험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특히 방송위원회가 거대여당이 지배하는 입법부와 행정부및 사법부의 추천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의구심은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방송법과 동시에 의결된 한국방송공사법 개정안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내용은 방송공사이사회가 지금까지는 문공부에 결산보고만 하게 돼 있는 것을 경영평가를 실시해 매년 공보처에 보고하고,공보처장관이 경영사항에 대해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신중히 검토」하도록 돼 있다. 정부의 경영관여를 명문화한 것이다.
공보처가 KBS경영에 직접 관여하겠다고 나선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작년말에 있었던 이른바 특근수당 「변태지출」사건으로 상징되는 방만한 경영이 지적돼온 바 있다. 따라서 KBS이사회가 경영만을 전담하고 이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문공부가 행사하겠다는 뜻인 것 같다.
방송위원회의 권한강화나 공보처의 KBS 경영간섭은 방송의 민주화와 자율성의 제고라는 점에서는 후퇴라는 지적이 나올 소지는 충분히 있다.
모든 전문적인 분야가 그렇듯이 방송도 방송인들 자신의 양식과 능력에 의해 자율적으로 그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그것이 국민들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적인 감시와 규제가 전적으로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들의 방송도 모두 체제상 감시ㆍ감독기구가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다만 감시와 규제의 방향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아니면 특정 권력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냐 하는 편향 또는 공공ㆍ공정의 차이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방송관련법의 국회심의 과정에서 이 점이 충분히 검토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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