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영희칼럼

북핵 위기 대화로 풀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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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일, 한.중 연쇄 정상회담이 열리고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미국과 러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한.중.일 방문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유엔 안보리에서는 북한 제재 결의안의 공식 초안(Blue copy)이 돌고 있다. 안보리는 유엔헌장 7장에 의한 군사제재가 빠진 경제제재 결의안을 채택할 것이다. 모두가 북핵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다.

미국과 북한도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의 의지를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1일의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열 번 이상 언급했다. 같은 날 북한 외무성도 담화문에서 미국 때문에 핵실험을 했지만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담화문이 핵실험 강행은 9.19 베이징 성명 이행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라고 주장한 것은 6자회담에 복귀해 미국과 대화하고 싶은 북한의 속마음으로 들린다. 미국과 북한 모두 6자회담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면 한국도 안보리 결의의 이행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북한 제재가 외교적인 해결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제재의 목적은 북한에 적정 수준의 압력을 가해 북핵 사태를 지난해 9.19 베이징 공동성명의 시점으로 되돌리는 데 있다. 안보리 결의가 나오고 지금 진행되는 일련의 외교적인 노력이 일단 마무리되면 한국에서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가와 대북 지원 문제를 놓고 시끄러운 격론이 벌어질 것 같다.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문제다. PSI에는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검문.검색하는 조치가 들어 있다. 그러나 가령 미국이나 노르웨이 해군함정이 태평양이나 인도양에서 북한 선박을 검문하는 것과 한국과 중국의 해군 또는 경찰 함정이 서해의 한국과 중국 수역에서 북한 선박을 검문하는 것은 위험 부담의 정도가 다르다. 한국은 PSI에 참가하되 행동의 폭을 한반도의 현실에 맞추는 데 크게 고민해야 한다.

대북 지원도 그렇다. 한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에 적극 참가해 북한 핵실험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문제는 이미 많은 투자를 했고 남북경협의 상징같이 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다. 경제제재를 이행할 때는 항상 해석상의 견해차가 생긴다. 안보리 결의가 나오면 그 틀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을 견주어 보고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 내 핵을 포기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북한에 퇴로를 열어놓고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6자회담 틀 안에서의 북.미 대화에 만족하는 것이 사태를 푸는 중요한 실마리다. 부시와 라이스도 북.미 직접대화를 거부하면서도 6자회담의 틀 안에서의 북.미 대화까지 반대한다는 말은 안 한다. 6자회담의 합의는 양자, 3자 또는 4자회담 같은 개별 접촉의 결과로 성사된다. 6자회담 안에서의 북.미 회담이 그 밖에서의 북.미 회담보다 권위나 실용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오늘 대북 포괄적 접근 방안의 폭을 확대해 북한의 핵실험이 초래한 새로운 사태를 담아내는 방안을 집중 논의하는 것도 북핵을 외교적으로 푸는 노력의 한 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공조다. 새로운 차원의 위기가 요구하는 한.미 공조를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의 386식 자주외교가 흔들어 놓은 한.미 관계의 복원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미국 책임을 거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런 일은 언론과 재야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PSI 참여와 대북 지원에 대해 정략적.감정적인 주장을 쏟아내는 것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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