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속엔 … '여자, 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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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34)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각별하다. 1992년 SBS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해 올해로 15년째지만 사실 영화배우라는 이름을 얻은 지는 얼마 되지 않는 그다. '보고 또 보고'(98년)를 비롯해 2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이상하게도 충무로와는 별로 인연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던 것이 첫 영화 '여자, 정혜'(감독 이윤기)가 2004년 부산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으면서 사정이 180도 바뀌었다. 이후 10여 군데 국제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받고 신인여우상도 두 개나 거머쥐면서 본격적인 영화 인생이 시작됐다.

올해는 부산영화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개막작 '가을로'(감독 김대승)의 주연으로 부산을 다시 찾는다. 영화 인생의 고향으로 2년 만에 금의환향을 하는 셈이다.

"영화제 개막작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제 영화가 선정돼 무척 기뻐요. 가을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멜로 영화여서 더 잘된 것 같고요. 2004년 부산을 찾았을 때 기억도 많이 나요. 첫 영화로 첫 관객을 만나 첫 인사를 하는 자리였죠. 모두 진지한 자세로 영화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가을로'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한다는 점에서 멜로이긴 하지만 그 사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 영화 초반부터 여주인공 민주(김지수)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민주는 현우(유지태)와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삼풍백화점에 갔다가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로부터 10년 뒤 민주가 선물로 준비했던 여행일기가 현우에게 전달되고, 현우는 일기에 적힌 민주의 발자취를 좇아 여행을 떠난다.

"현우는 민주를 그리워하며 여행길에 오르고, 민주는 죽었지만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현우와 함께하죠. 여행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죽은 자와 산 자가 사랑하는 정서적 공간이 돼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현우의 민주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깊게 하죠. 울고 짜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가슴이 아파지는 그런 영화예요."

영화는 90년대 한국 사회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참사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총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5분의 1 크기의 모형으로 백화점 건물을 재현하고 1000평의 공간을 지하 6m 깊이로 파내 붕괴현장을 만든 뒤 미진한 부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완했다.

김대승 감독은 "삼풍 사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인데 용서도 제대로 구하지 않고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것에 정말 화가 났다. 멜로 영화여서 분노를 직접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상처의 치유에 대해선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감정은 김지수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삼풍백화점에 가곤 했던 사람으로서 사고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생겨선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영화가 실제로 당하신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됐으면 좋겠어요."

'가을로'는 김지수에겐 '여자, 정혜''로망스'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에도 출연하긴 했지만 비중이 작은 단역이었다. 문제는 '여자, 정혜'에선 호평을 받았지만 '로망스'는 이런저런 지적이 많았다는 점. 말하자면 1승 1패인 셈이어서 이번 영화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로망스'는 아쉬운 시행착오였어요. 배우로서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에서 벗어난 영화였죠. 현재 '가을로'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차기작도 영화로 정했어요. 앞으로 드라마를 안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우선 순위는 영화에 두고 싶어요."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한 유지태와는 이른바 '쿵짝'이 잘 맞은 듯했다. 9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김지수가 "지태씨에게 묻어가려고 했다"고 농담을 던지자 유지태는 "영화가 망하면 모두 지수씨 탓"이라고 맞받아치며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다. 유지태는 "'여자, 정혜'로 본 지수씨는 감성적인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만나보니 여장부같이 활발한 성격의 누나였다"고 평했다. 김지수는 "엄지원씨까지 포함해 주연 배우 셋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으니 일부러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글=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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