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가 제도권으로 가는 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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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의 제도권 정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불안정성은 우리 사회안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세력을 빠짐없이,그리고 정확히 수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에따라 그동안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은 제도권내 정치세력간의 갈등과 집권세력과 제도권밖 정치세력간의 갈등으로 중층화되어 왔으며 그것이 그 갈등의 해소를 더욱 어렵게 해왔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대결이 아니라 대화로써,물리적 대결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해결해 나가려면 현존하는 권외 정치세력의 제도권화가 필수적이고 시급한 과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21일 발기인대회를 가진 민중당에 주목하고자 한다. 비록 민중당은 재야 정치세력 가운데 일부만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지만 재야 세력의 제도권 정치에의 첫 본격적 진입시도라는 점에서 충분히 지켜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볼때 그 성공적인 진입을 위해서는 크게 두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제도권 정치가 이들을 수용할 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우리 정치가 보혁구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 보수쪽으로부터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를 가능케 하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야 진보정치세력을 제도권화하려면 선거법을 개정해 진보신당도 의회로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하며,보안법 등 기타 관계법도 진취적으로 개정해 활동공간을 넓혀주어야 한다.
또 가장 큰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노조의 정치참여의 길도 점진적으로 허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의 조건은 민중당 스스로의 새로운 자세정립이다. 일단 제도권 진입을 결정했으면 제도권 정당다워야 할 것이다.
「제도권 정당답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헌법질서에 충실하고 의회주의를 따르는 것이다. 제도권 진입이 하나의 전술일 뿐,실제로는 혁명노선을 추구한다면 진입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제도권에 진입하겠다는 자체가 그러한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사표명으로 볼 수도 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앞으로 이에 대한 좀더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안팎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진보정치 정당의 제도권내 탄생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민중당에 대한 주문을 곁들이고자 한다. 그것은 민중에 뿌리를 두었다는 자임에 대해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점이다.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교조적ㆍ도식적 논리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동안의 자체 분열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 이념적 편협성과 독선주의에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이러한 일반의 의문들을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는 재야가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또 그러한 의문들에 대해서는 현실에 뿌리를 둔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응답해주기를 기대한다. 제도권 정당이 되려면 재야때와는 달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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