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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녀아내 찾는데 20년 걸렸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되돌아보면 기구하지 않은 삶이 없다. 특히 제삶은 남도 어쩌지 못하는 체험의 유일성을지니는 것이어서 그 기구함이 더욱 확대돼 보이기 쉽다. 따끔할 정도의 바늘 한뜸에도 마치도끼날을 맞은 것처럼 아파하고 되도록 상처의 크기를 부풀리는게 우리네의 인지상정이다.
사람들이 밥먹고 변소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흔히 『소설 열권을 써도 모자란다』고 호들갑을 떠는건 이렇듯 남다를 밖에 없는 자기체험을 주관적으로 과대수용하곤 하는 인간의 상정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충용씨(45)의 경우는 그렇지않다. 그의 역정이 지니는 기구함은 제스스로만 치부할뿐 남이 대수로워하지 않는 그런 평상의 기구함이 아니다. 행방감춘 아내를 찾아 중음의 넋처럼 20년동안 전국을 헤맨 그의 반생기는 한마디로「명과 실이 부합하는 기구한 삶」의 전형이다.
김씨가 소설형식을 빌러 최근 퍼낸 『나 이제 너를 잊으리』(정암문화사간)는 20년에 걸친 「아내찾기」라는 순애의 의지가 세사의 어처구니 없는 배리속에 뒤얽혀 들면서 시험받는 한 사내의 참담한 모습을 그린 자전기록이다.
『소설이라지만 허구는 단 한줄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지내온 제 삶의 모습은 이 책에 적힌 이야기 그대로예요. 이렇게 철저히 뒤틀리는 운명도 있나 생각하면 스스로도 기가 막힐 뿐입니다』
지은이가 이르듯이 『뒤로 넘어지고도 앞코를 깨는 어지간히 안풀리는 남자의 얘기를 쓴』이 소설의 줄거리는 그다지 복잡하진 않다.
실명의 주인공 김충용이 20세의 나이로 하숙집주인 딸 영란과 결혼하다. 이듬해 영란은 사산과 함께 그 후유증으로 나팔관절제수술을 받고 석녀가 된다.
주인공에게 닥친 갑작스런 징집명령. 논산훈련소에서 46일만에 귀가판정을 받고 집에 돌아왔으나 사랑하는 아내는 친정식구들과 자취를 감춰버리고 없다.
5대를 독자로 이어온 집안이어서 절손을 두려워한 아버지의 음모가 개입됐음을 알고 주인공 충용은 묘연해진 아내의 행방을 찾아 전국을 떠돌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내디딘 발걸음은 무위속에 내내 20년을 겉돌기만 한다.부산서면 뒷골목의 살롱사무장, 엿과 옥수수를 싣고 다니며 철가위를 두드리는 고물장수, 기타에 맞춰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며 시골장터를 누비는 떠돌이약장수, 그렇게 수소문하고 심인 「지라시」를 뿌리는 일에도 지쳐 4년3개월동안 뭍을 떠나 원양어선 선원노릇도 했다.
그리고 대잇기를 위한 억지결혼. 아들은 보았으나 거기 진하게 배어있는 새 아내의 부정. 헤어짐.
80년11월 그는 옛아내 영란이 울산 방어진에서 경양식점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택시전세요금을 미처 낼수 없었던 그는 난데없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1백25일동안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악몽의 한계상황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20년만에 찾아낸 영란의 행방. 동해 하광정부근의 어촌에 숨어든 그녀는 상배후3남매를 거느리고 사는 가난한 한 어부의 아내가 돼있었다.
『시집을 잘못 만났던 영란의 운명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감정이지만 남편의 심중에는 일말의 헤아림도 주지않은채 멋대로 몸을 숨겼다고 생각하면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행방을 찾고서는 몇차례나 하광정으로 내러가 집주위를 배회하다가 마침내 그녀를 만났습니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과 운명의 허망함을 탄하며 둘 다 눈이 붓도록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운다고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요』
될수만 었다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버리고싶은 과거사이지만 거기 괸 눈물과 한은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생각됐다.
84년 고향 이천에서 포천부로 주거를 옮긴뒤 한탄강변에 돈사를 마련하고 돼지치기를 생업으로 삼고있던 그는 그래서 작년봄부터 평소 잡기장에 틈틈이 적어놓았던 비망의 사연들을 원고지위에 옮겨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고지 1천5백장을 완성하는데 3개월 남깃 걸렸고 11월 정암문화사에서 단행본 출판을 제의해왔다.
옛 아내 유영란이 사는 곳을 발치에서 확인하고 단장의 아픔을 안고 돌아서는 길.
『땀에 젖어 목적지도 알아볼 수 없는 구겨진 차표 한 장을 진부령 가파른 고개마루에 던져버리고 천근같은 발걸음은 중심잃은 비틀걸음으로 진부령고개를 넘어서고 있다. 하염없이흘러내리는 눈물을 주먹으로 쓱 문지르고 황혼의 진부령고개를 넘어선다. 진부령고개를 넘어선다』로 말미를 삼은 그책은 지난 5월 출간과 함께 서점에 깔렸다.
첫책으로 조금은 글쓰는 일을 두려워 하지않게된 김충용씨는 『나 이제 너를 잊으리』에 이어질 실화소설 제2부작을 준비하고 있다. 영란이를 잘아는 고래잡이선주 최씨를 화자로 그녀가 잠적후 살아온 도정을 훑는 작업인데 현재 1천2백장 정도를 써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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