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들이 영호남 벽 허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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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재미동포 47명 오늘부터 전국토 순회 대행진/11일간 전국 돌며 한핏줄 확인/화개장터선 어깨동무 화합잔치도 마련
미국에 이민가 수십년씩 살아온 재미교포들이 「더이상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앞세우고 영ㆍ호남으로 갈려 싸우지 말자」고 고국의 동포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전국토순회대행진에 나섰다.
국민화합대행진해외동포협의회(회장 나수철ㆍ55ㆍ미국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소속 전국 각 지역출신 대표 47명과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협의회(상임의장 김지길목사) 회원 등 1백여명은 13일 서울을 출발,제주도ㆍ광주ㆍ하동ㆍ화개장터ㆍ부산ㆍ대구ㆍ춘천ㆍ임진각을 거쳐 서울로 되돌아오는 10박11일 동안의 행진을 벌인다.
이들은 전국12개 시ㆍ도에서 2㎞정도 도보행진 한뒤 민박하면서 각자의 고향친지들을 만나 『이제는 그만 서로에 대한 지역감정을 버리자』는 설득을 하게된다.
국민화합대행진의 하이라이트는 16일 영ㆍ호남 경계인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벌어진다.
해외동포들이 화개장터에 도착하면 광주ㆍ부산에서 관광버스로 달려온 시민들이 합세하고 장에 나온 주민들과 모두 어우러져 어깨동무하고 강강술래를 부르는 화합의 대잔치가 열리게 된다.
이들은 이에 앞서 서울의 국립묘지와 광주의 망월동 묘지를 모두 참배할 계획이다.
걸핏하면 야로 몰고 아니면 어용으로 취급하는 일부 고국의 동포들에게 조국을 떠난 입장에서 바라보면 죽은 사람 모두는 우리의 핏줄들 임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행사가 계획된 것은 지난1월 현회장 나씨가 회원 10만명인 미국 남가주 호남향우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부터.
『미국에는 1백70만명 정도의 교포가 살지만 고국에서와 같은 지역감정이 없어요. 모두 외롭기 때문이죠. 나라없는 월남인들이 기를 못피고 사는것을 볼때마다 고국이 소중해지죠. 한데 손바닥만한 땅덩어리에서 지역감정이라니….』
나씨는 「당선되면 고국에 가 지역감정좀 없애자는 운동을 벌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열렬한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나씨의 뜻이 전해지자 영남ㆍ충청향우회,이북5도민회 등 미국내 다른 교포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해왔고 나씨 등이 4월초 국민화합대행진해외동포협의회를 구성하자 순식간에 20만명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번 행사에 필요한 경비는 교포들이 1억5천여만원을 모금해 줬고 중앙일보 등 미국내 한국언론지사에서는 무료광고를 내주는 등 적극적으로 돕고나섰다.
회장 나씨 등 대표들은 이번 전체행사를 비디오로 촬영한뒤 중국ㆍ소련 등 공산권을 포함해 전세계에 퍼져있는 4백70만명의 해외동포 대표들에게 88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서로의 연락망을 통해 행사과정 테이프를 우송해줄 계획이다.
고국에 쉽게 올수 없는 처지에 있는 동포들이 비디오를 통해서나마 한국인임을 잊지않고 향수를 달랠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이들의 희망은 이번에는 미국지역의 대표들만 왔지만 내년엔 여러 나라에서 더 많은 교포들이 모여 한핏줄임을 확인하고 서로의 갈등을 풀수 있는 행사를 갖는 것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질때 울지않은 교포가 없습니다. 분단도 서러운데 지역감정이 웬말입니까.』
우리 모두 해외동포 나씨의 말을 정말 부끄럽게 되새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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