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충돌형 자동차 문화(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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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친지중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사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가족중 누군가가,또는 매일 만나는 친구,직장동료가 언제 교통사고의 참화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절실한 불안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현상은 물론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 정도는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
지금 서울 시청광장의 지하도에서는 치안본부와 도로교통안전협회가 공동으로 「90년 교통안전 사진및 포스터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 전시회에는 중앙선 침범·음주운전·과속·정비불량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일어난 사고의 결과로 피를 흘리며 뒤엉켜 죽은 피해자의 참담한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충격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그런 방지 가능한 참사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며 주최측은 이 전시회를 운전교습소·면허시험장 등으로 순회시키기를 촉구하고 싶다.
이 전시회가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운전자 자신의 과실과 태만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한다는 책임의식일 것이다. 외국의 경우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방법의 하나로 운전사고로 인한 참혹한 현장을 비디오로 보게 하는 것이 관행이 되고 있다.
그런 충격이 구금이나 금전적 손해보다 훨씬 더 효과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두드러지게 흔한 교통사고 형태는 정면충돌사고다. 2차선 도로에서 커브길이나 언덕위처럼 시계가 제한된 지점에서 조급하게 추월하는 것은 정면충돌의 주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한 짓을 예사로 하고 있는 것이 일반 운전자들의 습성이 되고 있다.
치안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89년중 하루평균 34.5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8백93명이 부상했다. 이는 1년 통계로 치면 1만2천5백여명의 사망과 32만5천여명의 부상자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전염병으로 그런 숫자의 사상자가 생겼다고 치면 온나라가 들끓을 정도의 위기감과 그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됐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를 자동차문명에 부수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식할 정도로 둔감해 있다.
그러나 당국과 사회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평가한다면 세계 1위의 교통사고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날 수 있는 대책을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의 시발점으로서 이번 전시회는 한번으로 끝나지 말고 운전교육과 교통질서 확립체제의 일부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와같은 노력의 하나로서 현행 운전교습제도와 면허시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된다고 믿는다. 운행방법 습득을 우선하고 안전수칙을 뒤로 미루는 방식은 운전자의 증가와 정비례해 사고율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번 거론돼 왔지만 여건상의 어려움때문에 흐지부지된 도로주행을 거치는 면허시험은 꼭 실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험의 기본은 주차때나 필요한 S자·T자 운행시험이 아니라 안전수칙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주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때 운전교습방법도 자연 그런 방식으로 개선될 것이다.
노련한 운전자들은 길에서 미숙한 운전자가 우선순위도,차선의 개념도 무시하고 달려드는 경우를 자주 겪는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러고도 그런 운전자는 자신의 과오를 아예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1차적 책임은 살인의 흉기가 될 수 있는 차량의 운전을 안전수칙도 모르게 교육시킨 교습소와 그런 사람에게 면허시험을 합격시켜 준 당국자에게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차량이 생활필수품으로 되어가고 있다. 자동차수는 매년 불어나고 도로의 수용능력은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에따라 교통질서는 점점 문란해지고 모두가 자신의 과오는 덮어둔 채 다른 운전자의 잘못만 탓하는 교통 무질서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악화추세를 되돌리고 끔찍한 수의 교통사상자 수를 줄이기 위해 참상현장의 전시회는 계속 열려야 하고 운전교육과 면허제도의 확충을 통해 새로 나오는 운전자부터라도 질서와 안전수칙을 지키도록 유도해 나가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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