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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물시장 가격폭등·락위험 미리 방지|하루거래량 1조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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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선물거래라는 생소한 용어가 우리 곁에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선물거래가 무엇이냐하는 것은 둘째치고 지난 85년 1억4백만달러에 불과하던 국내의 선물거래량이 매년 2배정도씩 늘어 지난해엔 14억7천6백만달러가 됐다. 그러나 세계 70여도시의 선물거래시장에서 지금도 매일 1조달러어치의 각종 상품들이 선물거래되는 것에 비하면 아직 「세계 10위권의 무역국」이라는 명함이 부끄러워 못견딜 정도다. 국민소득 4천달러 수준에 못미치는 분야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중에 가장 낙후된 것중의 하나가 바로 선물거래인 것이다. 선물거래란 무엇이고, 세계의 선물거래시장이 어디까지 가고 있으며, 우리는 어느정도 수준인지를 알아본다. 【편집자주】
◇선물거래=변덕이 죽끊듯하는 고추값을 놓고 봄철에 일찌감치 「밭떼기」를 하는 복부인이 있다고 치자.
가을에 가서 고추값이 복부인과 농부가 봄철에 미리 정한 값보다 더 오르면 농부는 『더 비싸게 팔수 있는 것을…』하며 땅을 치겠지만 만일 반대로 가을시세가 미리 정한 값보다 더 떨어진다면 농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이래서 생겨나는 거래가 선도거래인데 실제 시장에서는 이같은 선도거래를 하고싶은 농부와 복부인이 수없이 많을 터이고, 그렇다면 어느 농부와 어느 복부인이 정한 「가을의 고추값」을 가을이 되기 전에 다시 웃돈을 얹거나 깎거나 해서 사고 팔려는 전문적인 장사꾼 내지 투기꾼도 많을 것이며 이래서 생겨난 시장, 곧「가을의 고추값」을 미리 사고 파는 시장이 바로 선물시장이다.
만일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고추선물시장이 있다면 어느 고추가공기업은 가을의 고추값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봄에 「가을 고추값」을 하나 사놓는다.
만일 가을에 고추값이 폭등한다면 이 기업은 폭등한 값에 그냥 고추를 사고 대신 봄에 미리 싸게 사놓은 「가을 고추값」을 가을에 비싸게 팔아 그 차익으로 손해본 만큼을 거의 메울수 있다.
선물시장의 가격은 그때그때의 현물시장 가격과 거의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선물거래를 통해 가격폭락의 위험을 미리 피할수 있는 것이다.
◇종류및 특징=모든 종류의 상품이 선물거래의 대상이 될수 있지만 수량화·표준화 문제등으로 현재는 세계적으로 1백종 정도가 선물로 거래되고 있다.
계약에서 물품인도의 약정기간은 보통 6개월∼1년단위로 이뤄지며 이 기간이 너무 길 경우 투기자들도 선뜻 모험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에는 18개월짜리가 가장 긴 선물로 나와 있다.
선물거래는 계약만 체결했지, 대금까지 최초에 거래되는 것이 아니므로 각 거래소는 약속이행을 위해 별도의 증거금과 청산소제도를 두고 있다.
거래자는 보통 총매매약정대금의 2∼3%에서 10∼15%에 이르는 (하루 가격변동폭을 충북히 커버하는 만큼의) 「거래개시증거금」을 먼저 내야하며 이후 값이 떨어지면 그때마다 「추가증거금」을 내야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엔 청산소에서 즉시 반대매매를 실시한다.
선물거래는 또한 소액의 증거금만으로 큰 승부를 걸수 있는 점이 투기자들에게는 매력이다.
A씨가 돼지10마리를 3개월 선물로 1백만원에 매입키로하고 증거금으로 매입대금의 5%인 5만원을 냈을 경우 만약 열흘 뒤에 돼지값이 10% 올랐다면 A씨는 자기 투자액의 두배인 10만원(이자는 고려치 않음)을 번 셈이 되는 것이다.
이를 선물시강에서는 「지렛대효과」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일정액의 옵션 프리미엄을 내고 매입 또는 매도의 선택권 자체를 갖는 옵션 프리미엄도 생겨나고 있다.
◇세계시장 추이=1848년 시카고 곡물상인들이 시카고상품거래소를 설립한후 이제는 세계적으로 70여곳의 거래소에서 곡물·원유·금속은 물론 금리·주가에 이르기까지 1백여 품목이 거래되고 있다.
선물거래규모는 지난 60년 3백90만건에서 70년 1천3백60만건, 80년 9천2백10만건, 지난해에는 3억건으로 급증했고 하루거래대금도 1조달러에 달한다.
60년대까지만해도 농산물과 금속류가 주종이었으나 70년대 에너지파동을 겪으면서 원유가 중요한 거래품목으로 자리잡게 됐고 80년대 들어서는 통화·금리·주가등 금융상품의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다.
72년 미국의 통화정책이 금본위에서 달러본위로 바꿔면서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첫등반시켰던 금융선물은 87년 전체 선물거래량의 60%를 차지, 기존의 실물선물 거래량보다 많아진뒤 지난해에는 점유율이 70%로 높아져 새로운 주력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또 콩·옥수수등 농산물은 시카고상품거래소가, 육류·통화는 시카고상업거래소가 각각 거래량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비철금속은 런던금속거래소(LME)가, 원유등 에너지는 뉴욕상업거래소(NYME)가 각각수위를 차지하고 있는등 거래소마다 간판종목이 다른 것도 특징이다.
총거래 규모면에서는 시카고의 이들 두거래소가 70여곳중 1∼2위를 기록하고 있고 3위인 뉴욕상업거래소까지 합치면 전세계 거래량의 50%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미국이 선물거래의 원조답게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이 3∼4년사이 동경증권거래소·동경상품거래소등 두긋을 거래량상위 10위권에 잇따라 올려놓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선물거래를 등한시해왔던 프랑스·독일· 스웨덴등 유럽국가들도 거래소 신설및 거래품목 증설에 경쟁적으로 나서는등 후발국들의 추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등이 이미 독자적인 선물거래소를 갖추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는 기존의 팜유·주석외에 코코아를, 홍콩은 금융외에 석유를 각각 추가상장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중국도 남부지방에 소맥·옥수수등 곡물선물시장을, 북부지방에 비철금속선물시장을 각각 개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태국도 옥수수선물시장 개설을 추진중이다.
◇국내현황=75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된 뒤 현재는 삼성물산·선경·풍산등 32개업체가 농산물·금속등 12개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특히 80년대 후반들어 거래량이 급증, 85년 1억4백만달러를 기록한 뒤 매년 2배가량씩 늘어 지난해엔 14억7천6백만달러가 거래됐다.
거래중개회사도 83년 첫 설립후 이제는 8개사로 늘어났고 종합상사마다 전담팀을 설치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미국·영국의 주요거래소에 직원을 상주시키는등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자체적인 거래소가 아직 설립돼 있지 않은등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관련법규·제도도 미비된 상태다.
특히 선물거래와 비슷한 선물환거래의 경우 80년 2억달러에서 88년 1천6백3억달러로 거래 규모는 크게 늘었으나 국제금융정보에 어둡고 전문인력이 부족해 거래량의 90%를 외국은행 지점에 맡기고 있으며 거래손실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선물거래 관련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독자적인 거래소도 설립하는등 다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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