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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가는 노잣돈 3조5000억원…장례업계 즐거운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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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지난해와 올해는 우리나라 장례 문화와 산업에 중대한 변혁이 있었던 해다. 지난해 처음으로 화장률이 매장률을 넘어섰다. 올해는 쌍춘년과 윤달이 끼면서 장례ㆍ장묘 업계는 대 특수를 맛봤다. 장례식장이나 납골시설의 고급화ㆍ대형화 바람도 최근 두 해 동안 벌어진 현상이다. 고가 장례용품이 불티나게 팔려는가 하면, 장례보험까지 속속 선을 보였다. 망자를 보내는 산업에 얼마나 많은 노잣돈이 쓰이는지, 장례 문화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등을 민족 명절 추석을 맞아 이코노미스트가 들여다봤다.


쌍춘년 윤달(8월 24일~9월 21일)이 지나갔다. 이 기간 중 장례·장묘업계는 그야말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백화점·재래시장뿐 아니라 TV 홈쇼핑에서 수의(壽衣)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묘지를 이장하는 행렬도 줄을 이어 평달의 10배가 넘었다.

4000만원짜리 명품 수의가 등장했고, 1억원짜리 납골묘도 선을 보였다. 신문마다 장례용품 전면광고가 거의 매일 나오다시피 하고 있다. 안동에 소재한 한 수의 업체 사장은 “보통 윤년 한 해에 나머지 3년 버는 것만큼 버는데, 올해는 쌍춘년에 윤달까지 있어 대박 난 곳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장례·장묘산업 규모는 얼마나 될까?

아직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대략 2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하는 게 전부다. 이를 알아보려면, 일단 한해 사망자 수를 알아야 한다. 최근 3년간 한해 평균 사망자는 약 24만5000명이다. 지난해 조사망률(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은 5.4명이었다. 여기에 장례 비용과 묘지· 납골묘 구입비용 등을 곱해 보면 어느 정도 추정치가 나온다.

소비자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묘지 등 매장 비용을 제외한 장례 관련 비용은 건당 평균 938만원이다. 묘지 구입 비용 714만원, 납골당 안치 비용 260만원 등이었다. 장례를 포함해 매장까지 총비용은 평균 1652만원, 화장할 경우에는 1198만원이 소요된 것으로 분석됐다.

4천만원짜리 명품 수의 등장

지난해 사망자 수는 24만5511명(보건복지부 자료). 이 중 화장한 건수가 전체의 52.59%(통계청 자료)로 12만9138건이다. 따라서 지난해 화장 시 총 소요비용은 1조547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매장 시 총 소요비용 1조9224억원을 더하면 지난해 장묘산업 규모는 3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이에 대해 고덕기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가정의례과 교수는 “최근 몇 년간 한해 사망자 수가 거의 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장묘 산업 규모 역시 3조5000억원 안팎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 장례보험 같은 사전 장례 준비 산업과 호스피스, 고령자 심리치료, 그리고 사후 제례비용까지 포함한 광의의 장례산업을 10조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묘지나 납골묘 구입을 제외하고 장례 관련 용품과 염습비, 장례식 이용료,조문객 접객비 등 순수하게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돈은 건당 평균 885만원(2005년 소비자보호원 조사)이 들어간다. 국내 사망자 100명 중 약 70~75명의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나머지는 종교시설(약 5%)이나 자택에서 장을 치른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장례식장에서 돌아가는 돈의 규모는 연간 1조5000억원이 약간 넘는다. 현재 전국에 장례식장은 700여 곳. 이 중 75%가 병원 부속 장례식장이다. 장례식장별로 규모가 다르기는 하지만 평균 1곳당 21억여원이다.

지난 윤달 한달 동안 업체별로 많게는 평소의 10배가 넘게 팔려나간 수의는 보통 순수 장례 비용 규모의 10%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서울 소재 K병원 장례식장 중급 빈소를 사용할 때 장례식장 이용 비용(접객비 제외)은 300만원 가량이었는데, 이 중 수의 값(중급)은 30만원이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내 수의 시장 규모를 150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수의가 대부분 삼베로 만들어지는데, 국내에는 원사가 턱없이 모자라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해 온다. 최명호 현대종합상조 이사는 “국내에서 재배되는 대마에서 나오는 삼베를 모두 수의로 만든다고 해도 5000벌밖에 안 된다”며 “대부부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고덕기 교수는 “원사까지 국내산인 순수 국산 수의는 연간 1000벌 정도”라고 설명했다. ‘관(棺)’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장례식장에 사용되는 관의 값은 하급이 15만~20만원, 중급이 50만~70만원 정도다. 중·하급의 관은 대부분 오동나무로 만들어지는데, 원목 역시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다.

장례산업의 큰 축을 차지하는 장묘 산업도 큰 변화를 맞고 있다. 핵심은 화장을 선호하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납골 관련 시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화장 장려 정책으로 사설 납골당 설치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2001년 이후 빠른 속도로 늘어나 지난해 말 현재 188개로 증가했다.

이곳에 약 160만기가 봉안되는데, 현재까지 대략 50%가 차 있다. 납골 관련 시설들이 고급화·현대화·공원화되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뿔뿔이 흩어져 있는 조상의 묘를 한 곳에 봉안하는 가족봉안묘가 인기를 끌면서 추모관과 가족공원이 혼합된 형태의 사설 봉안당(납골당)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봉안당의 평균 분양가는 200만원 선이다.

장례지도사도 새 직업으로 인기

장례산업과 관련해 새로 부각되는 직업도 있다. 바로 장례지도사다. 장례지도사는 장례 절차를 주관하는 ‘호상(護喪)’의 역할을 한다. 장례지도사는 현재 5개 전문대학, 2개 4년제 대학, 장례업협회 같은 기관에서 연간 700~800명씩 배출된다. 이 중 현업으로 유입되는 비율은 10~15% 정도라고 한다.

장례지도사는 장례식장·상조회사·묘지관리소 등에 취직하는데, 상조회사의 경우 영업 실적에 따라 월봉 400만원 정도를 받기도 한다. 일부 장례지도사는 염습을 하는 염사로 취직한다. 미국에는 퓨너럴 디렉터(Funeral Directot), 일본에는 장례관리사라고 해서 우리나라 장례지도사와 유사한 직종이 있다.

장례산업과 관련 상조회사도 크게 늘고 있다. 상조회사란 장례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국내에 270여 곳이 있다. 상조회사는 전형적인 일본 모델이다. 국내에는 1980년대 초 처음 등장했다. 대부분 지방을 기반으로 설립됐지만 최근에는 서울로 입성하는 상조회사도 속속 늘고 있다.

상조회사에 가입하면 일정 기간(120개월 안팎) 동안 장례비용을 분납하고, 장사를 치를 일이 생기면 장례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아직까지 상조회사 이용률은 미비하다. 부산의 경우 약 15%에 달하지만 서울·수도권 지역은 1%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장례보험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신동아화재·동양생명·현대해상·미래에셋생명·LG카드·농협 등이 장례보험 결합 상품을 내놨다. 장례보험은 목돈이 들어가는 장례의 특성을 고려해 지난해부터 출시가 본격화된 틈새 상품이다. 대부분 상품은 보험료 분납 중에 부모가 사망하면 이후 납입료는 면제된다. 또한 장례절차 안내, 장례식장 섭외, 도우미 파견, 장례물품 지원 등 토털 서비스도 함께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장례산업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장례 산업 전반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장례식장부터 문제다. 최근 장례식장과 관련된 이슈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고급화·대형화 바람, 또 하나는 불법의 멍에를 벗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폭리 등 법률로 규제해야

최근 호텔식 장례식장으로 변신한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비롯해 서울 S병원, Y대 병원, 안양 M병원 등이 장례식장을 리모델링하거나 공사 중이다. 한 병원 장례식장 총책임자는 “국·공립 병원의 경우 장례식장 수익이 적자를 메워주는 효자”라며 “최근 들어 인테리어에 부쩍 신경을 쓰거나 서비스 질을 높인 장례식장 개축 경쟁이 뜨겁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병원 장례식장 대부분이 현행 의료법과 건축법상 불법이라는 데 있다. 법률적으로 일반 주거지역에 장례식장은 설치할 수 없다. 항상 불법 시비에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한 시민이 국내 103곳의 병원 부속 장례식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때문에 대한병원협회 등 관련 업계에서는 병원 장례식장 운영에 대한 법률 개정을 정부에 건의해 놓은 상태다.

2000년 이후 매년 10~20%씩 양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폭리, 불공정 거래, 질 낮은 서비스, 불량한 위생 상태 등으로 가뜩이나 가족을 잃고 황망해 있는 고객들의 원성을 사왔던 점도 시정돼야 할 대목이다. 일부에서는 저승 가는데도 바가지를 쓰느냐는 원성이 나오기도 한다. 이와 관련, 국회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례식장 등에 관한 법률’이 상정돼 있는 상태다.

크게 늘어난 상조회사와 관련된 지적도 많다. 사실 상조회사는 법률 사각지대다. 설립이나 운영과 관련된 법이 전혀 없어 소비자보호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는 상조회사와 관련된 해약, 환불 거부 등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상조회사 대부분이 영세한 탓도 크지만 관련 부처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던 이유도 크다.

상조회사는 일종의 보험업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사실상 금융업이다. 일본의 경우 상조회사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설립이 가능하다. 또 고객 유치금의 50%는 반드시 대손충당금 형태로 적립해야만 한다. 고객 보호를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금융당국이나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이와 관련된 법 개정을 미뤄 오며서 회사가 부도나 고객이 분납금을 모두 날려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또 다른 문제는 상조회사에 가입하면 장례용품 구입부터 장례절차를 모두 주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수익을 이유로 상조회사 가입 고객을 꺼려 분쟁이 많다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전국 화장장 46곳뿐

화장장이 늘고 있지만 관련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현재 전국에 화장터는 46곳. 한 해 13만여 건에 이르는 화장을 이곳에서 모두 소화한다. 고덕기 교수는 “화장문화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지만 화장 관련 인프라도 부족하고, 화장 의례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지자체별로 화장 관련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같은 특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초고가 장례용품이나 납골묘가 등장했지만, 이 역시 일부 상류층에 해당되는 것이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

장례산업은 기본적으로 사망자가 많아야 규모가 커지게 돼 있다. 지난 10년간 사망자 수는 큰 변동 없이 24만~25만 명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인구 1000명당 사망자를 계산하는 조사망률이 5.2명인데 2030년 1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를 고려하지 않고, 산술적으로만 봐도 시장규모는 2배 이상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아직까지는 유교적인 엄숙주의 때문에 장례 관련 사업이 다양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 개발이 이뤄진다면 ‘저승 노잣돈’ 규모는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얘기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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