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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선거자금 공방] "넌 깨끗하냐" 진흙탕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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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권이 선거자금 문제로 이전투구(泥田鬪狗)양상이다. 한나라당.민주당.열린 우리당.자민련 등 4당이 서로 물고 물리는 국면이다. 싸움은 '누가 깨끗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더럽냐'는 논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느 당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깔리면서다.

최돈웅 의원이 수수한 1백억원이 중앙당으로 유입됐다는 의혹을 받는 한나라당은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자금은 문제가 없느냐"며 청와대와 우리당을 압박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적 선택이다.

민주당도 "대선 자금에서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큰집 작은집 관계"라며 두 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우리당은 "대선뿐 아니라 총선.경선 자금 등 3대 정치자금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며 치고 나왔다. 차제에 정치자금 문제는 끝장을 보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총선 자금은 민주당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다.

자민련은 "한나라당은 고해성사하고 당을 해체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흙탕물 싸움 속에서도 기류는 양분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걱정하는 반면 우리당은 최대한 불씨를 살려 정치개혁으로 논의를 옮아가겠다는 속내다. 공세와 수세가 분명히 갈린 셈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이날 운영위에서 "지난 대선 때 자금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을 승계한 입장에서 내 책임 하에 끌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 집행은 공정할 때만 정의의 편"이라며 "권노갑씨의 2백억원, 박지원씨의 1백50억원, 대통령 측근들의 대선 자금과 관련해서는 수사하지 않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盧대통령은 돼지 저금통으로 대선을 치렀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며 "안희정.이광재씨 등 측근들과 관련된 얘기들이 결국 대선과 연결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사덕 총무도 "최도술씨의 11억원 수수가 과연 전부며, 굿모닝시티와 썬앤문 사건은 지난 대선과 아무 연관이 없을까"라며 "공정하지 않은 법은 그 자체가 폭력"이라고 盧대통령 주변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반면 우리당 김원기 주비위원장은 "한나라당은 이번에 대선 자금의 전모를 국민 앞에 밝히고 석고대죄해야 한다"며 "검찰도 대선 자금뿐 아니라 지난 총선과 당 경선 자금까지 3대 정치자금을 모조리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내에서는 金위원장의 총선 자금에 대한 언급은 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발끈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신당인 우리당이 큰소리칠 입장이 못된다"며 "검찰총장도 아닌 金위원장이 뭣 때문에 수사 지휘를 하려 드느냐"고 불쾌해 했다.

정균환 총무는 "김원기 위원장의 총선 자금 수사 요구는 도를 넘는 발언"이라며 "당시 총선에서 호남 의원들은 오히려 있는 돈을 중앙당에 보태야 했고, 그 돈은 신당인 우리당 사람들이 다 갖다 썼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지도부는 권노갑씨의 현대 비자금 수수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총선 자금 수사 요구가 나왔다는 사실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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