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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희귀·난치병 관리 방치만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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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내 희귀.난치병환자들의 실태를 다룬 중앙일보 기획기사(10월 21~23일 게재)는 이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50여만명의 환자 가운데 정부의 진료비 지원을 받는 사람은 불과 6%라고 한다. 그나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대부분의 진료비는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국내 희귀.난치성 질환은 2백개 정도로 추정되지만 제대로 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극히 일부만 파악된 상태다. 정부가 지원할 법적 근거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니 환자와 가족들이 엄청난 진료비 때문에 빚에 내몰려 끝내는 치료를 포기하는 사태를 맞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12일 딸의 희귀병 진료에 거액의 빚을 지다가 인공호흡기를 떼 딸을 죽게 했던 한 가장의 비극적 사건도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니 사회적 인식 또한 좋을 리 없다. 기업과 사회복지단체로부터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렵다. 환자나 가족들이 스스로 만든 50여개의 모임이 질병정보를 공유하고 의료비 상호부조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정책부재와 사회적 냉대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정부가 불가항력적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게 최소한의 도움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체제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미국은 국립보건원 예산의 20%를 이 분야에 배정하고 있고, 6천여종의 질환을 희귀.난치병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일본도 1972년부터 정부 주도로 파악에 나서 현재 1백18개 질환을 희귀.난치병으로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전면적인 실태파악에 착수하고 진단.치료 등 체계적인 지원.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들 질환도 초기에 대응하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사회안전망을 갖추기 위한 예산.세제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희귀.난치병이 더 이상 천형(天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정부는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