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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 받았던 그들 '우행시'를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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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형수 윤수와 깊은 상처를 가진 여교수 유정의 짧은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의 밑바닥에는 '사형제 폐지'라는 이슈가 깔려있다. 영화는 소설보다 로맨스가 두드러지지만 사형제에 대한 성찰적 메시지는 제법 묵직하게 관객을 건드린다.

이 영화를 누구보다 가슴 절절하게 본 두 사람을 만났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양동화(49).김성만(50)씨다. 이들은 88년 무기로 감형되고 98년 특별사면되기까지 13년간 복역했다. 2년4개월간은 사형확정수로 살았다. 양씨는 출옥후 IT사업에 뛰어들어 디지털 콘텐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 입학한 김씨는 박사 논문을 쓰는 중이다. 이 사건은 최근 고문.조작 논란으로 재조명되고도 있다.

영화를 본 후 명동성당에서 만난 두 사람은 "소설을 읽고 옛날 악몽을 다시 꿨다"면서도 사형수 묘사가 리얼한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사형제 문제를 다룬 그 어떤 외화보다 감동적인 이 영화를 통해 사형제 폐지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양동화(이하 양)=사형수의 심리와 현장 묘사가 아주 생생하다. 교화위원 모니카 수녀(윤여정)는 실제 수녀님이 모델이다. 작가의 꼼꼼한 취재력이 느껴진다. 정신적으로 만신창이인 유정이 윤수에게 '나도 꼴통'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사형수도 인간이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김성만(이하 김)=윤수가 사형장 앞에 서는 장면은 내가 감옥에서 매일 상상하던 그 장면이었다. 소름이 돋더라.

양=감옥 안에서 처음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는 제소자가 있었다. 범죄자는 대부분 불우한 환경 출신이다. 윤수도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살인자의 사회적 탄생에 대해 잘 보여준다.

김=윤수가 사형장으로 가는 장면에 교도관이 2명 나온다. 실제는 호송 인원이 10명이다. 사형수가 맥 빠져 걷지 못하거나 격렬하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교도관은 모두 흰 장갑을 낀다. 사형수는 계속 수갑 차고 생활하는데, 그 고통은 영화의 수 백배다.

양=지금도 손목에 쇠붙이가 닿으면 소스라친다.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본 적 있는데 한 달간 아무것도 못 먹었다. 집행 날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교도관들이 군기를 세게 잡는다. 5000명 제소자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언젠가는 나랑 김형이 집행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옆방 문이 덜컹 열렸다. "먼저 갑니다"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교도관들의 고통도 크다. 제도적 살인의 도구가 됐다는 자책감 때문에 술 마시고 이혼하고 가정파탄 나고 정신분열이 되기도 한다.

김=모든 범죄에는 국가.사회의 책임이 있다. 사형이란 한 사람을 죽여 그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고 국가는 깨끗하다고 손터는 행위다. 피해자도 모든 책임을 오직 가해자에게 돌린다. 오로지 그가 죽어야만 갚음 된다고 생각한다.

양='살인현장을 보면 사형제 존치론자가 되고 사형현장을 보면 사형제 폐지론자가 된다'는 대사가 절묘하다.

김=사형제 폐지론자가 존치론자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족이 살해당했을 때 범인 용서할 수 있느냐'는 질문 하나면 누구나 무너진다. 하지만 사형제가 강력범죄를 진짜 막는가, 오심의 가능성은 없는가, 여전히 문제다. 사형제가 강력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입증됐다고 본다. 우리 국회의원들도 상당수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화가 안 된다. 정치적 부담 때문이다. 만약 사형제가 폐지된 후 유영철 같은 이가 나타나면 그때 여론의 비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거다.

양=그 부담을 더는 것이 국민여론이다. 살인현장에서 바라보는 존치론적 의미만으로는 전향적 사고를 할 수 없다. 생명은 모든 것에 앞서는 가치고, 교도소는 한 사회 인권의 바로미터다. 극악한 범죄자들이지만 결국은 참회하고 죽어간다. 사형제란 극중 대사처럼 '악마를 천사로 만들어놓고 죽이는' 아이러니컬한 제도다.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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