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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개국서 온 1400여 명 시도 수필도 '또박또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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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일 열린 외국인 한글백일장에 참가한 례나(27.러시아.(左))와 올가(22.러시아)가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글발을 다듬고 있다. 박종근 기자

제560회 한글날(9일)을 앞두고 '제15회 전국 외국인 한글 백일장'이 열린 연세대 노천극장. 미국.러시아 등 59개국에서 온 1400여 명의 남녀 외국인이 참석해 한국어 실력을 겨뤘다.

참가자들은 시 부문의 '거울'과 수필 부문의 '소식'이란 주제어를 놓고 두 시간 동안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마음속의 거울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을 비춘다…."

6개월 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입학한 재일교포 3세 야나기 시즈(23.여.한국명 유정애)는 30여 분간 머리를 긁적거린 끝에 이렇게 시를 풀어나갔다.

일본에서 경영학을 공부 중인 그는 "재일교포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며 "앞으로 중국어까지 공부해 한.중.일을 오가는 경영인이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참가 외국인들은 따가운 가을 햇살에 선글라스를 끼고, 신문으로 햇빛을 가려 가며 국어사전을 동원해 '작품'을 쓰는 데 매달렸다. 태권도 등 한국 문화를 접해본 경험이 있는 '고수'들은 여유있게 가을 정취를 즐기며 글을 써내려가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핀란드에서 온 미카 호프렌(36)은 한국인 여자친구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6개월 전 한국땅을 밟았다. 그는 "한국어가 어렵지만 여자친구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장원(문화관광부장관상)은 인터넷을 통해 고향 소식을 접한다는 내용의 수필을 쓴 대만 출신의 시에 쇼 메이(36.여)에게 돌아갔다.

결혼한 지 8개월된 '새댁'으로 연세대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자연은 가을 소식을 전하고 사람은 인터넷으로 고향에 소식을 전한다"는 내용을 담아 매끄러운 문장과 문법 실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1993년부터 3년간 한국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 그는 "인터넷을 통해 남편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아 덜 외롭고 고국 소식도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며 "이념 대립으로 갈등이 깊어지는 한국 사회와 외성인.내성인으로 나뉘어 갈등의 골이 깊은 대만이 비슷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몽골 출신 샤인 사이칸(여.26)은 "한글은 정말 우수하고 과학적인데 배우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수필 부문 우수상 수상자인 베트남 출신 팜 티퀸화(여.29)는 "한국 속담이나 구비문학은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교훈을 주더라"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인 한양대 김광규 명예 교수(국문학)는 "상당수가 문법 하나 안 틀리고 글씨도 우리나라 청소년들보다 또박또박 잘 써 내려가 놀랐다"며 "한글이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가진 언어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gnomo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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